
축구야 운동경기이지만 생사를 건 전쟁터에서 아군끼리 내분이 일면 어떨까. 더욱이 수만 명의 목숨이 걸린 대규모 전투에서 지휘관끼리 의견이 안 맞거나 개인적 감정이 앞서 작전에 실패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결과는 끔찍하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1914년 7월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중 13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6만명의 포로가 발생한 타넨베르크 전투다. 그해 8월26일부터 단 5일동안 벌어진 대참사다.
1차대전이 터지자 러시아 황제는 군대에 독일 공격을 명령한다. 렌넨캄프의 1군과 삼소노프의 2군이 선봉에 섰다. 둘은 역전의 노장이면서도 오랜 라이벌이었다. 그냥 라이벌이 아닌,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득 차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원수급 라이벌이다. 둘의 갈등은 1904년 터진 러일전쟁 와중에 불거졌다. 렌넨캄프가 삼소노프를 지원하기로 했는데 렌넨캄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삼소노프 부대가 크게 패했다. 격분한 삼소노프가 렌넨캄프의 뺨을 후려치면서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가 된다.
렌넨캄프 부대가 먼저 독일로 진격해 들어갔다. 급조된 농민 군대로 오합지졸이었지만 워낙 많은 병력 덕분에 독일의 굼비넨 마을을 손쉽게 점령했다. 방심한 렌넨캄프는 추격을 멈추었다. 병력 수에서 밀린 독일군은 작전상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곧이어 삼소노프 부대도 독일 전선에 투입됐다. 상부에선 렌넨캄프 부대와 합류하라고 지시했지만 구원(舊怨) 때문에 일부러 습지를 택해 멀리 떨어져서 진격했다.
두 장군의 불화를 포착한 독일군은 3만명의 병력을 총동원해 독일 타넨베르크에 도착해 막 휴식하려던 삼소노프 부대를 공격했다. 삼소노프 부대원은 25만명이었지만 3만명의 독일군에 처참하게 당했고, 삼소노프는 자살했다. 두 지도자의 불화가 몰고 온 참사다. 이번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대응이 큰 힘이 됐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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