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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훼손된 행각 135칸… 황궁 덕수궁, 벌거벗겨진 정전

입력 : 2015-08-13 18:52:27 수정 : 2015-08-13 19: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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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훼손 100년, 제 모습 못찾는 궁궐] (중) 대한문에 들어서 아래로 물이 졸졸 흐르는 금천교를 지나면 조원문을 만난다. 높이 자란 수목의 녹색과 어우러진 조원문의 단청 빛이 시원하다. 조원을 지나면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이다. 호위하듯 사방을 둘러싼 행각(行閣·궁궐 전각의 줄행랑)에는 중화전의 업무를 보조하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처럼 중층은 아니지만 대한제국 황궁의 중심 전각다운 기품이 당당하다.

옛날의 덕수궁은 이랬다. 여느 궁궐처럼 정문부터 정전까지 세 개의 문(대한문-조원문-중화문)이 서 있었고, 중화전은 행각으로 궁궐의 전각다운 모습이 완연했다. 조원문, 중화전 행각 모두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행각 없는 중화전은 벌거벗겨진 듯 보인다.

문화재청은 2005년 수립한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기본계획)에서 중화전 행각과 조원문의 복원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중심 영역인 중화전 권역의 복원이 덕수궁 위상 회복의 상징성을 갖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2, 3년 전에 마무리했어야 할 작업이다. 

궁궐의 전각은 행각으로 영역을 구분하고, 그 안에 보조시설을 두었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의 행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뒤 복원되지 않은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벌거벗은 덕수궁의 중심, 정전 중화전


행각은 각 전각을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을 했다. 전각의 기능을 보좌하는 각종 사무실, 창고 등이 들어선 곳이기도 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중화전 행각은 전체가 135칸이며 중화문을 포함해 5개의 문이 있었다.

덕수궁의 중화전은 행각 없이 서 있다. 행각이 언제,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순종이 세상을 떠나고 덕수궁 내 건물들 처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훼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 석조전과 석조전 서관의 준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문화재청은 기본계획 수립 당시 “중화전 행각은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공감대 아래 중기계획의 하나로 2009∼2012년 복원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필요한 예산은 124억2000만원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기본계획을 만들어가던 무렵인 2004년 발굴조사를 한 이후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행각 복원은 풀기 쉽지 않은 문제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중화전 행각 자리의 일부와 석조전 앞 정원 영역이 겹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애초 ‘중화전 행각의 원형 복원’을 원칙으로 세웠으나 이럴 경우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했던 석조전의 정원 영역 훼손이 불가피해진다. 행각 원형 복원을 전제로 작성된 조감도가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화전 왼쪽의 행각 아래 부분이 석조전 정원을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중화전 행각 복원으로 석조전이 가지는 역사성이 부정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복원작업이 진행된 게 없다 보니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행각과 정원 모두 역사적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에 행각을 복원하기 위해 정원 영역을 깎아낸다면 누구라도 반대할 것”이라며 “기본계획 수립 당시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경기대 안창모 교수는 “공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전제”라면서도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정전으로서 근대국가를 지향한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석조전을 중심으로 주변구역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원의 보존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서울시립대 이강근 교수는 “공모전을 통해 공의를 수렴하고 최선의 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행각과 정원 모두 중요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부정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며 “양쪽이 공존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공모하면 그 안에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토론을 통해 어느 하나를 선택해 가는 과정에서 공의가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문, 계획은 2013년 복원 마무리…현실은 손도 못대

조원문은 1902년 11월 세워졌다가 1904년 4월 덕수궁에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중화전과 함께 소실됐다. 고종은 주변의 반대에도 1906년 덕수궁을 재건하면서 중화전, 조원문을 다시 지었다.

기본계획에서 조원문은 덕수궁 조성의 기본원리를 구현한 건물로 파악했다. 2005년 1월 열린 4차 자문회의에서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상징성 강한 건물들을 복원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 사례 중 하나로 조원문의 복원을 들었다. 자문회의의 의견은 기본계획에 그대로 반영돼 “대한문-조원문-중화문으로 구성되는…원래의 모습으로 환원하여 궁궐조영의 기본틀을 확보하고자…조원문은 그 터를 발굴해 복원한다”고 못박았다. 조원문 복원에는 14억7000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고, 2011∼2013년 복원 과제 중 하나로 정해졌다. 원래 계획은 이렇지만 복원 마무리 시점에서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원문 복원 관련 작업은 진척이 없다.

복원의 필요성과 관련한 분위기 변화도 감지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원문의 복원이 덕수궁 조성의 기본원리에 부합하는 것은 맞지만, 과연 현재 시점에서 원칙만 따지는 복원을 해야 하는지 다시 검토할 필요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궁궐 전문가는 “조원문의 복원을 통해 덕수궁에 구현됐던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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