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번째 챕터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대본 데일 와써맨·작곡 미리 치·작사 조 대리언)다. 1965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올해 라이선스 초연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2007년 두 번째 공연이 90% 이상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2008년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 재공연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조명음향상, 음악감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에 앙코르 공연했다. 2012년 7개월 간 장기공연하며 인기를 확인했고 2013년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이 7번째 시즌이다.
◇설명서 읽기 전에(줄거리)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으로 끌려온 세르반테스. 시인 겸 극작가인 그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세무 공무원도 겸하고 있다. 몰락한 귀족이지만 성실하고 올곧은 그는 세금을 내지 않는 교회를 저당으로 잡았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된 상황이다.
지하감옥에서 만난 죄수들이 자신이 쓴 희곡 '돈키호테'를 불 태우려 하자 죄수들의 우두머리가 제안한 재판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극' 형태로 스스로를 변론하게 된다. 죄수들과 함께 공연을 벌이는 동안은 극중극의 형식을 띤다.
극 중에서 세르반테스는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다. 지금은(세르반테스 당시) 존재도 하지 않은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알론조는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고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떠난다. 풍차를 거인 괴수라 여기며 달려드는 그는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들어간다. 그곳에서 하녀인 '알돈자'를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로 부르고, 여관주인을 영주라 부르며 그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이발사의 면도대야를 황금투구라 부르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현실은 진실의 적"이라 말하는 돈키호테의 비정상적인, 과하게 말하면 '미친' 행동은 가뜩이나 미친 세상에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의 은유다. 이를 가슴 뜨겁게 풀어나가는 작품성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을 거친 만큼 중언부언하는 건 바이트 낭비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배우들의 면면을 톺아보고자 한다. 4일 오후 8시 공연과 5일 오후 3시 공연을 기반으로 해 주요 배역들의 매력을 비교해봤다. 주요 배역 3인은 더블 캐스팅이다.
◇지적인 류정한과 열정의 조승우
지금까지 김성기, 정성화,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 등 내로라하는 배우 7명이 돈키호테(극중극으로 세르반테스도 연기해야 해 1인2역의 모양새를 띤다)를 연기했는데 10주년 무대에 오르는 류정한과 조승우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스타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한국 초연을 도맡아 출연해 한 때 '초연 총알받이'로 통하기도 한 류정한은 2005년 '맨 오브 라만차'(당시 공연 제목 '돈키호테') 라이선스 초연에도 나왔다. 이후 2008년, 2010년, 2012년(연장 공연 합류)에 이어 이번이 3년 만이다.
류정한이 초연에 주로 캐스팅된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클래시컬한 발성과 노래로 캐릭터의 전형을 만드는데 출중하다. 거기에 지적인 이미지도 부여한다. 돈키호테도 마찬가지다. 광기에 휩싸인 노인이지만 류정한의 돈키호테는 그의 지성미로 인해 따뜻하다. 공연 내내 꿈의 온기를 잃지 않는 이유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조지킬'로 신드롬을 일으킨 조승우지만 사실 그의 인생을 바꾼 뮤지컬은 '맨 오브 라만차'다. 아무런 꿈도 없던 중학생 시절, 고교생이던 누나(배우 조서연)가 출연한 뮤지컬 '돈키호테'(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뮤지컬배우의 꿈을 품게 됐다. 특히 이 뮤지컬의 대표 넘버인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에 출연함으로써 마침내 꿈을 이룬 조승우는 그 만큼 열정적이다. '맨 오브 라만차' 연습 때 특히 실전처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다시 출연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조승우의 돈키호테는 비교적 애드리브가 많고 장난스럽다. 진짜 무대에서는 더 즐길 줄 안다. 나이가 든 돈키호테, 그의 순박한 시종 산초는 종종 슬랩스틱 형태의 소동극을 연출하는데 그 때는 어느 코미디보다 웃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진지한 장면에서 파괴감이 더욱 느껴진다.
◇야성과 다채로움의 전미도와 관능과 순수함의 린아
이번 시즌의 돈키호테가 이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스타인데 반해 알돈자 역은 새로운 얼굴들이다. 하지만 뮤지컬 신에서는 이미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이들이다. 전미도는 뮤지컬, 연극 장르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으며 린아는 뮤지컬 '머더 발라드'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이 나눠 맡는 '알돈자'는 거리에서 저 밑바닥 인생을 살지만 돈키호테로부터 '둘시네아'(사랑스러운 여인)로 불리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끝내 용기를 내게 되는 역으로 다양한 감정선을 넘나든다. 이로 인해 스타 여자 뮤지컬배우라면 누구나 탐내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무슨 역이든 오차 없이 새롭게 연기해내는 전미도의 알돈자는 역시 신선하다. 야수 같이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표현해, 희망을 붙잡는 순간이 더 절실하고 설레게 만드는 묘수를 발휘한다. 전미도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 '원스'의 '걸' 등 한 캐릭터 안에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는데 알돈자에서 이 스펙트럼을 한층 더 키운다.
린아의 매력은 다소 거칠어 보이는 외면에 깃든 순수함이다. 창녀지만 그 안에 순정으로 가득찬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역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던 이유다. 알돈자는 순정보다 순수에 어울리는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다. 루시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녀보다 더 희망적이고 그 만큼 성장하는 캐릭터다. 실제 뮤지컬 신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린아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익살스런 정상훈과 순수하고 투명한 김호영
산초 역은 돈키호테의 영원한 조력자로 여느 뮤지컬 속 조연보다 감초 역이 도드라진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인데 주로 웃음 코드를 담당한다. 끼가 다분한 정상훈과 김호영이 제격이다.
정상훈은 2013년 이미 이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만큼 노련하고 능수능란하다. 특히 최근 tvN 'SNL코리아'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물오른 애드리브를 선보인다. 기존 산초 대사와 행동보다 더해진 것이 눈에 띄는데 관객들은 그 때마다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화답하다. 그래서 그의 산초는 익살스럽다.
뮤지컬 '라카지' '프리실라' 등으로 밝고 명랑한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만든 김호영은 산초 역시 자신의 장기를 살려 소화한다. 이번이 첫 산초인 만큼 본래 캐릭터와 상황에 충실하다. 하지만 워낙 개성이 강한 탓에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산초가 탄생했다. 특히 더 순수해지고 투명해졌다.
◇작품 자체가 주는 힘
우선 배우들의 호연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뮤지컬이지만 미국에서 50년, 한국에서 10년을 이어온 작품인 만큼 내공이 탄탄한 건 깔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이룰 수 없는 꿈'을 위시로 한 넘버들은 특정할 것도 없이 모두 명곡이다. '둘시네아' '내게 뭘 원하나' '라만차의 사나이' '그분의 생각뿐' 등 장르에 상관 없이 한번 들으면 귀에 감기는 곡들인데 공연 내내 몇차례 반복되며 극의 리듬을 안기고 관객들을 극에 빠져들게 하는 통로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특히 스패니시, 집시 등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월드뮤직 풍의 넘버는 들을수록 새롭다. '라만차의 사나이'를 비롯해 주요 넘버들을 클래시컬하게 편곡해서 연속으로 들려주는 5분 가량의 '서곡'은 품격을 부여한다.
'맨오브라만차'는 요즘 공연계를 장악하고 있는 대형 무대장치 등 화려한 볼거리를 갖추지 않았다.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무장한 배우, 극중극을 넘나드는 탄탄한 이야기, 가닿을 수 없는 이상을 향한 열정과 연민이 범벅이 돼 감동을 안기는 음악이 주가 돼 묵직하게 승부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소. 오직 주어진 나의 길을 따를 뿐' 등의 명언은 덤이다. 막판에 극 속 모든 인물들도 관객들도 '임파서블 드림'을 합창하며 꿈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객들까지 꿈을 노래하게 만다는 뮤지컬 ★★★★☆
11월1일까지 신도림역 디큐브아트센터. 돈키호테 류정한·조승우, 알돈자 전미도·린아, 산초 정상훈·김호영. 프로듀서 신춘수, 연출 데이비드 스완, 음악감독 김문정, 무대디자인 서숙진, 조명디자인 이우형, 음향디자인 권도경. 6만~14만원. 오디뮤지컬컴퍼니·오픈리뷰. 02-6467-2209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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