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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무데뽀 시대 부른 사무라이처럼… ‘전쟁하는 국가’ 깃발 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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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19 21:39:09 수정 : 2015-07-19 21: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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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무데뽀’의 역사학 생활 속의 일제 잔재(殘滓)를 털어내자는 한 신문의 기사를 본다. 1982년 신문이니 33년 전의 ‘고전’이다. 그러나 오늘 보아도 어색하지 않다. 느낌이 참 묘하다.

잔재는 쓰고 남은 찌꺼기다. ‘지난 시기의 낡은 생각이나 생활양식의 찌꺼기’라고 풀어볼 수도 있겠다. 일제(日帝)는 일본 제국주의이니 식민지 시기의 찌꺼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김광협(1941∼1990) 기자의 글 한 대목이다.

‘…거의 일본말인 줄 모르고 쓰게끔 됐다. “걔 무데뽀야. 그런데 앗사리한 데는 있더라” 했을 때 ‘무데뽀’(無鐵砲·무철포)는 분별없이 덤빈다는 말이고 ‘앗사리’는 깨끗하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일본군의 조총. 전투에서 대박을 친 것으로 평가됐으나 막상 전쟁 후 일본의 총포 기술은 형편없이 쇠락해 ‘무데뽀 시대’가 됐다.
무데뽀도 앗사리도 다 일본말이다. 털어내야 할, 재활용도 안 될 쓰레기일 터. 우리 말글의 본디와 역사도 모르면서 ‘한글이 국제언어올림픽에서 몇 년 연속 금메달 받았다네…’ 따위의 근거 없고 쪼잔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부 쇼비니스트(국수주의자)들이 생각난다. 아마 그런 이들이 무데뽀 같은 이런 말을 앗사리하게 쓰고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무데뽀들이다.

이 무데뽀는, 실은 역사의 산물이다. 조선 중국(명나라) 왜국(倭國·일본) 3국이 치열하게 조선 땅과 그 남쪽 바다에서 각축(角逐)을 벌인 거대한 국제 전쟁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조총(鳥銃) 즉 ‘데뽀’(鐵砲)다. 조총은 나는 새(鳥)도 떨어뜨리는 총이라는, 철포의 다른 이름이다.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을 운명(殞命)하게 한 흉기이기도 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초상화. 조총의 탄환에 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전 이상범 화백의 그림.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품
철포의 일본말이 데뽀다. 무철포가 무데뽀다. 이는 철포 즉 조총이 없다는 말이다. 총도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은 분별없다, 이런 의미에서 흔히 이 말의 어원(語源)을 찾는다.

사전은 ‘일의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새겼다. 막무가내(莫無可奈)나 무모(無謀)라는 한자어로 ‘순화하겠다’는 국립국어원의 고지문도 붙어있다.

혹 우리말이나 영어에서 이런 경우의 말을 본 일이 있는가. 칼이 없다는 무검(無劍), 활이 없다는 무궁(無弓)이란 말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없으므로, 당연히 이런 낱말도 없다.

일본말에만 특별히 있는 것 같은 이 말의 생성(生成)에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조총(철포)도 없이 전장에 나서는 얼빠진 군인’이라는 뜻을 넘어서는, 시대적 또는 문명사적 의의가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필자의 독창적인 짐작만은 아니다.

문명은 진보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얘기다. 우리가 여태 바꿔 들어야 했던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되어버린 스마트폰들을 생각한다. 총과 포(砲)도 이제는 미사일로까지 진화했다. 그런데 왜국의 철포와 관련한 문물은 그렇지 않았다.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통념(通念)과 달리 그 전쟁 이후 철포(부대)는 없어지다시피 쇠락했다.

잠정적(暫定的)이지만, 전쟁이 끝나자 곧 철포가 없는 무데포(無鐵砲)의 시대가 됐다. 무데뽀라는 말이 (일본)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로 보인다. 일본의 독특한 사무라이 문화가 불러온 특별한 현상이었다.

군주에게 몸 바쳐 권력을 얻는 무사인 사무라이가 왜국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혼’(魂)은 칼이다. 새 무기 데뽀 즉 조총이 비록 수십 미터 바깥의 적을 쓰러뜨린다고는 하나, 이를 자신의 혼으로 바꾸기 위해 칼 대신 총을 메고 이를 쏘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철퍼덕 엎드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저, 카우보이가 된 사무라이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1543년 포르투갈 상인들에게서 받은 총 한 자루를 분해하고 그 구조를 그려 만들기 시작한 조총은 임진왜란 때 꽤 쓸 만했다. 그 무렵 1분에 2발 정도의 속도로 쏠 수 있었다 한다. 3열로 선 조총병의 1열이 쏘고 뒤로 빠지면 2열이 쏘고 하는 교차사격 방식은 상대 진영에 치명적이었다. 대박을 쳤다. 그런데 그 전쟁 이후에는 토사구팽의 신세가 된 것이다.

왜 혼란과 반발이 없었겠는가. 또 한참 후 들어온 우수한 서양 문물은 조총을 버리다시피 한 그간의 상황에 대해 특별한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 무데뽀였고, 약간의 의미 전이(轉移) 끝에 むてっぽう(무데뽀)는 ‘무모한’ ‘분별없는’의 뜻으로도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말은 한국에 건너 왔다.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어원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 그래서일 것이다. 여러 ‘해석’들을 보면 ‘무데뽀는 사물을 가리지 않고 마구 쏘아대는 대포를 말하는 것인데…’ 하는 것도 있고, ‘무데뽀 정신으로 도전하면 안 될 게 있겠는가’식의 싸구려 ‘능력개발학’ 교재의 제목도 있다. 이제는 잊어도 될, 결코 예쁘지 않은 말이다.

‘전쟁하는 일본’의 깃발을 든 아베 신조 정권의 형국은 ‘무데뽀 시대’로의 회귀 또는 퇴보를 보는 것 같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일본 정치의 열등감과 위기감이 무데뽀식의 국가개조로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글 아는 다수 시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전쟁하는 일본’의 깃발을 들었다. 미국의 애완견이 되어 품격이나 원칙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몰염치 국가로 퇴보하는 모습이다.

사무라이들의 반발로 무데뽀의 시대를 부른 그 옛날 문명의 퇴보를 보는 것만 같다. 다시 일본은 어디를 향해 가려는가. 그렇다, 역사는 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 사족(蛇足)

게임이나 영화 등의 영향이겠다. ‘사무라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닌자’도 그렇다. 우리말 ‘김치’처럼 국제적인 낱말이 된 일본어이다. 국력이나 문화의 힘은 저마다의 고유한 단어를 이렇게 세계화하는 힘이기도 하다. 사무라이(さむらい·侍)는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계급이다. 모신다는 뜻의 시(侍)자가 보여주는 뜻처럼 옛날 귀인의 신변을 호위하던 상급 무사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한 가락 하는, 기골(奇骨) 있는 남자’의 뜻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일본의 국력이 커지고 특유의 문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 말도 국제적인 쓰임새가 생겨났다.

우리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士가 책 읽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는 선비계급을 가리키는 것과 대조적으로 왜국의 사농공상의 士는 사무라이다.

우리의 양반처럼 상당한 혜택 위에서 안정된 신분을 누리는 계급이다. 모시는 주군으로부터 미움만 받지 않는다면 이런 혜택은 대를 이어 세습됐다. 무사이니 그 힘은 당연히 칼에서 나왔다. 닌자(にんじゃ·忍者)는 사무라이와 비슷한 때 암살 첩보 파괴 침투 등을 하는 복면 쓴 전문집단이었다. 참고 견딘다는 인(忍)자가 의미하듯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세력이었다. 사무라이처럼 특정한 주군을 모시지 않고 독자적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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