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오명 벗을 대수술 절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출범 이후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한 차례 재정보강을 하는 등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섰다. 140대 국정과제를 통해 ‘건전재정 기조를 정착한다’고 밝혔지만 추경으로 인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6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삼 정부 출범 시 제시했던 복지 확충을 위한 세출 구조조정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현 정부는 130조원의 추가적인 복지지출 소요를 마련하기 위해 공약가계부를 작성했다. 지하경제의 양성화 및 조세지출 축소와 함께 대대적인 세출 구조조정을 공약했는바 이는 바로 국고보조금을 개혁하겠다고 한 것 아닌가.
정부가 민간 평가단에 맡겨 전체 2502개 국고보조사업 중 1422개 사업을 평가한 결과가 정상 운영되는 사업은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평가단은 1213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65개 사업은 당장 폐지하고, 75개 사업(2833억원)은 단계적으로 폐지, 275개 사업(6조7091억원)은 감축, 71개 사업(1조3337억원)은 통폐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 |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
현행 보조금사업을 대폭 정비하기 위해 보조사업의 지방이양, 일몰제 적용에 따른 자동폐지, 그리고 중앙정부가 해당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근본적 개혁 방안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관리 혁신이 기대되거나 상위 프로그램의 전략목표가 동일한 사업에 대해서는 포괄보조금으로 개편하는 방안도 전향적 추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앙정부 부처별 재정기능 중복이나 재정사업의 경쟁체계를 개편해 국고보조사업을 전담할 수 있도록 부처별 업무경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정책 사각지대가 부처별 업무 경계 영역에서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하는 새로운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 힘들 가능성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매년 국고보조금평가단이 운용되는 존재의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중앙-광역-기초로 연결되는 중층적 관리체계를 단층화해 재정관리의 효율성과 사업성과에 대한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중 광역과 기초 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기능 조정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각종 국고보조사업에서 지방비 부담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사전 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위해 지자체 간 보조사업에서 지불정산 체계를 설계·운영할 필요가 있다. 지방비를 부담해야 하는 사업 유형을 의무적 부담과 재량적 부담으로 구분해 전자를 중심으로 지방세입 항목에 ‘지방부담금’을 신설·관리해 국고보조사업의 특성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지방재정의 실질적 부담 가능성과 재정 경직성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나라살림은 효율적이고 공평할 때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덕목이 있다는 것은 쉽게 잊는다. 국민들이 세금을 낼 때 가장 우선시하는 덕목은 과연 내가 낸 세금이 그 값을 하는가, 즉 제대로 쓰인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눈먼 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고보조금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