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카드회사의 광고 속 유해진, 이나영의 대사다. 무기력한 표정과 대사가 절묘하게 어울려 공감과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했다는 이른바 '삼포세대' 청춘을 비롯한 한국 사회 전체의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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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꽃보다할배 그리스편 공식 포스터 |
그런 국민들에게 평균연령 77세의 관록 있는 할배들의 이야기가 와 닿는다. 지난 2013년 첫 방송된 tvN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네 노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황혼의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의 예능프로그램이다.
네 명의 할배들은 우리가 평소 봐왔던 깊이 있는 연기력의 대배우가 아니라 친근하고 때로는 귀여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였고, 진솔한 덕담과 청춘예찬, 인생의 회고 등 출연진들의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숱한 명언들이 화제가 됐다.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우리에게 배낭여행을 떠난 네 노익장이 건넨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 덕담과 격려들이 다양한 세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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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꽃보다할배 캡처 |
◆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꽃할배 스페인 편의 첫화에서 이순재는 81세라는 고령임에도 불구, 졸지에 배낭여행단의 대장이 됐다. 수하물 찾기, 길안내 등 전권을 일임 받은 맏형 이순재는 이동하는 내내 지도를 손에서 떼지 않고 공부하는 등 나이와 관계없이 늘 발전하고 멈춰 서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동생들을 이끌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이순재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라며 자신의 인생철학을 전했다. 또한 "끝을 생각하기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팔십이라는 것도 잊고 '아직도 육십이구나'하며 산다"고 덧붙이며 나이를 핑계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멈춰서버린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일침을 전했다.
젊은이들의 신조어 중 '꼰대'라는 말이 있다. 구태의연한 가치에 집착하는 구세대를 비꼬는 의미다. 이 단어는 주로 아랫세대의 문화나 달라진 시대에 반감을 가지고 "나 젊을 땐 말야", 혹은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담겨있다. 이 신조어는 세대차이로 발생되는 문제점과 각종 사회현상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대 차이와 관련된 각종 사회·문화 현상들이 모두 기성세대의 탓은 아니다. 또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타인, 더 나아가 타 세대를 고스란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기성세대의 노력과 더불어 젊은층은 기성세대에게 무작정 이해를 요구하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지켜온 가치를 잘 살펴보고, 온고지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쌍방간의 이해와 배려가 있다면 세대 간의 정서적 격차는 언제든 줄어들 수 있다.
꽃할배 이순재의 일침은 상당수의 중장년층에 해당되는 '꼰대'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또한 이 말은 장차 기성세대가 될 젊은이들에게 성장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돼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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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꽃보다할배 캡처 |
◆ "앞으로도 가능성이 얼마든 열려있기 때문에 청춘은 아름답다"
꽃할배 프랑스 편 3회에서 베르사유 잔디광장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던 신구는 "앞으로도 가능성이 얼마든 열려있기 때문에 청춘은 아름답다"며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냈다. 신구를 비롯한 꽃할배들은 "청춘은 아름다우니 젊을 때 한껏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배낭여행 내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춘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70이 넘은 나이에 돌아보는 청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능성이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할배들은 청춘을 동경할 뿐, 인생 가장 푸릇했던 젊음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들의 청춘예찬은 더욱 애잔하게 와 닿고, 젊은이들에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
현재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삼포세대'란 말이 최근엔 '오포세대', '칠포세대'로 점차 변형되고 있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 등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취업난의 원인으로 많은 것들을 꼽을 수 있지만 '취업 희망자의 눈이 높아졌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지난 해 한 대기업에서 밝힌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은 300:1. 안정이 보장돼있는 공무원 채용은 더욱 치열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중소기업 신입사원 경쟁률은 32:1. 이러한 원인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소기업이 이름난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공무원에 비해 급여나 복지수준이 비교적 낮고 부정적 시각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흔히 젊은 시절을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청춘들은 높아진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기에 아직도 대기업의 면접장만을 전전하는 것은 아닐까? 직진보다 빠른 우회의 힘이라는 말이 있듯, 정해둔 길로만 가려고 하기 보다는 돌아가는 것도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다. 기성세대 역시 이들의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젊음을 빌미로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고 버리는' 관행을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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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꽃보다할배 캡처 |
◆ "인간의 존재란 다 각자가 가진 의미가 있다"
꽃할배 그리스 편 마지막 회에서 이순재는 그리스 여행을 마무리하며 기원전 432년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한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없다고 감탄했다. 이순재는 "각자 자신의 목표와 의지로 역량을 발휘하고 개발하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며, "인간의 존재란 다 각자가 가진 의미가 있다"고 감상을 남겼다.
지난 4월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43개국 중 118위. 누구나 할 것 없이 힘들고 고달픈 현대사회, 청소년들은 입시지옥에, 청춘들은 취업난, 중년과 가장들은 끝없는 업무량과 불안한 노후 등의 문제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다는 이는 찾기 어렵다. 이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며 당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예찬하는 꽃할배 이순재의 말은 스스로가 한없이 하찮고 작아보여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일, 취미 등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쳐진 어깨를 위로해주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는 말했다. "잊지 말자, 난 엄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미생들은 스스로가 한없이 하찮고 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으며, 저마다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런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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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꽃보다할배 공식 페이스북 |
박근형은 지난 3월 꽃할배 그리스 편을 마친 후 꽃할배의 인기 요인으로 "현시대에 불거지는 많은 문제를 노인들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사견을 밝혔다. 꽃할배를 시청하는 많은 이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문제와 고민을 지녔을 것이다. 시청자는 방송을 통해 꽃할배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조언, 격려와 덕담 속에서 성장하고 위로받고 있다.
라이프팀 차주화·장유진 기자 cici0608@segye.com
<남성뉴스>남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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