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유럽 가톨릭교회의 영적 심장과 같은 곳이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이곳 이베리아반도 유럽 끝자락까지 찾아와 복음의 씨앗을 뿌렸으며 그 절대적 믿음은 순교로 이어졌다. 이런 헌신은 16세기 유럽 사회에 강하게 몰아친 종교분열의 불길을 막아냈으며, 일찍이 남미와 필리핀에 가톨릭을 전파해 남미 최초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하는 등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 주관으로 지난 6∼14일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지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순례에 동행했다. 개혁과 영성의 숨결이 깊이 스며 있는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영성적 터전을 4회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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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톨릭교회의 영적 성지인 스페인 톨레도에는 유서 깊은 톨레도 대성당과 산토 토메 성당, 스페인 최고화가 엘 그레코의 생가 등이 있다. 사진 맨 위 중앙의 뾰족한 종탑의 고딕양식 건물이 톨레도 대성당이다. |
성당 중앙의 독립된 성가대석 ‘코로(coro)’에는 아름다운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다. 벽과 수직으로 설치된 특이한 형태의 파이프오르간은 1540년 제작됐다고 하는데, 연주를 완벽히 해냈던 가장 오래된 오르간으로 기록된다. 벽면 한쪽의 아기예수를 무동태운 모습이 담긴 대형 성화의 주인공은 여유와 든든함 때문일까. 스페인에서는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한국에서는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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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에 있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성모자상. |
성당 안에는 여러 개의 경당(소성당)이 있다. 그중 한 개는 화랑으로 쓰이며, 스페인 최고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걸작 ‘성의(聖衣)를 입는 사람’ 등이 전시돼 있다. 그레코 성화에서 예수는 군중들이 자신의 옷을 서로 가져가려 해도, 야유를 던져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 어떤 성화보다 성스럽다. 예수가 입은 성의는 붉은 빛이 강렬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물론 마음까지 잡아끈다.
종교화를 주로 그려온 그레코의 천재성은 톨레도 대성당 인근의 산토 토메(성 도마) 성당의 성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460×360cm)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성당은 선행과 신심이 두터운 오르가스 시(市)의 돈 곤살로 루이스 백작이 사재를 털어 재건축했다. 백작을 매장할 때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과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두 성인이 친히 나타나 시신을 입관했다고 한다. 교회는 이런 전승을 그려줄 화가를 찾던 중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그레코를 만났다. 그레코는 그림을 상하로 나눠 천상계와 지상계를 표현했고, 백작이 1323년 사망한 인물임에도 장례식 조문객은 그레코 시대의 존경받는 인물로 채웠다. 선심을 쓰듯 당시 국왕 필립페 2세도 그려 넣었다. 시신을 입관하는 왼쪽의 젊은 성인이 스데반이다. 조문객으로 그레코 자신과 8세의 아들도 그려 넣었다. 아들은 이 그림의 안내자이며, 유일하게 이들 부자만 정면을 응시하게 표현함으로써 현대의 관람객들과 눈을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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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에 있는 엘 그레코 작 ‘성의를 입는 사람’. |
톨레도는 2000년 역사를 가진 고도로,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이슬람정복시대와 가톨릭군주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남겼다.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종교와 언어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제2 이스라엘로 생각했던 곳이다. 도시 전체가 가톨릭의 관용과 미덕, 순명의 정신을 발산하고 있다. 스페인 중부지방은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여서 남다른 정감마저 감돌았다.
톨레도(스페인)=글·사진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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