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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받아들인 한국, 中보다 발음 보수적으로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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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4 21:50:21 수정 : 2015-06-14 21: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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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65〉 설문해자와 한국어 (下) “양쯔강에서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지성)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건 6월1일 밤 9시 반쯤, 어둠 속에서 456명을 태운 유람선은 회오리바람과 폭우에 휘청거리더니 이내 강물 속으로 뒤집혔다.”

‘중국판(版) 세월호’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도 이 참사가 더 안타까웠다. 이 글을 보며 어떤 이들은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가졌을 법하다. ‘우리말 한자 발음으로는 [동방지성]이 중국어 발음으로는 [둥팡즈싱]이네, 왜 저리 비슷하지?’ 東方之星은 ‘동쪽의 별[星]’이란 뜻이다.

그 말뿐인가? 양쯔강은 양자강(揚子江)의 ‘양자’를 중국어로 읽은 것이다. 江은 [장] 정도의 음가(音價)다. 제대로 양자강을 중국어로 읽는다면 [양쯔장]인 것이다. 둥팡즈싱의 경우와 흡사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북경(北京)과 베이징, 천진(天津)과 톈진도 그런 경우 아닌가?

공벽(孔壁)이라고도 하는 노벽(魯壁). 공자사당인 공묘(孔廟)에 있는 이 벽 안에서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피하기 위해 숨겨놓은 책들이 나왔다.
문자학 음운(音韻) 분야 전문가인 김태완 교수(전남대 중문과)는 ‘같은 소리의 글자가 따로 떨어진 지역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문자학 원로 진태하 교수(인제대 석좌교수)도 ‘우리는 한자를 받아들일 때의 소릿값을 비교적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중국은 점차 자연스럽게 변화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 역사가 펼쳐진 동북아시아에 한자가 많이 유입된 때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가 무르익은 수(隋), 당(唐)대로 추정한다. 이를테면, 당초 東方之星을 우리나 수나라 사람들이나 [동방지성]에 가깝게 읽었을 것이다. 그러다 중국에서는 [둥팡즈싱]으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바깥(隋, 唐)으로부터 문자를 받아들인 경우 그 소리와 뜻이 그것을 전해준 나라보다 더 보수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언어학은 풀이한다. 애초 두 지역에서 소리로도 그 글자의 뜻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비슷하다는 느낌만을 갖게 된 이유다.

우리 한글(훈민정음)은 소리글자(표음문자)로 글자 자체가 발음기호다. 중국의 문자(文字·한자)는 뜻글자(표의문자)로 발음을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이 우리 한글과는 다르다. ‘설문해자’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그 발음을 어떻게 표시했을까? 지금처럼 스마트폰 사전에서 말의 소리까지 들려주는 상황과는 달랐다. 소리를 고정하고 기록하는 녹음(錄音)의 개념이 없었던 때다.

독약개(讀若介)라는 ‘讀若’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허신이 펴낸 설문해자의 발음 표기법이었다. (설명하고자 하는 이 글자는) ‘介[개]라고 읽는다’는 뜻이다. 介처럼, 보다 일반적이고 여러 사람이 잘 아는 기본단어를 제시하여 표제어의 발음을 가르쳐주는 방법이다.

갑골문 시기 다음의 문자 구현 형태인 금문(金文). 솥[정(鼎)]이나 술단지[이(彛)], 종(鐘) 등 금속 기물에 기념하고자 하는 문안을 새겼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올 때 그 경전(經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Sanskrit·범어 梵語)를 번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범어는 소리글자다. 주문(呪文)이나 인명 지명 따위 고유명사를 원래의 소리에 가깝게 표기하는데 기왕의 ‘∼처럼 읽는다’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필요 등에 부응해 생겨난 것이 반절법(反切法)이다.

글자의 소리를 성모(聲母)와 그 나머지의 둘로 나누고 [이분(二分)], 반절상자(上字)로 성모를, 반절하자(下字)로 나머지 요소를 나타낸 것이 반절법이다. 분(分)자를 예로 들면, 부문절(府文切)이다. 府의 ‘ㅂ’(성모)과 文의 ‘ㅁ’을 제외한 소리[운]를 합쳐 [분]으로 읽는다는 뜻이다. 대조적으로 우리 말글은 소리를 자음과 모음, 그리고 받침의 세 요소로 나눈다.

‘둥팡즈싱’의 경우처럼, 이 분(分)자의 현대 중국어 발음은 [펜]에 가깝다. 소리는 [분]에서 [펜]으로 변했어도 옛날 그 소리를 표시하던 반절법 표시는 그대로다. 우리나라에 남은 중국 문자의 한자어 독음(讀音)이 옛날 중국어의 발음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이유다. 한자어는 중국의 문자를 우리 쓰기에 편하도록 받아들인 우리말이다.

크기가 좀 큰 한자사전에는 이 반절법 표시가 다 붙어있다. 한자를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이 표시는 중요하다. 이 표시가 있는 자전 하나쯤은 갖추어야 ‘문자가 있는 한국사람’으로서의 공부가 가능한 것이다. 府文切처럼 ‘**切’이라고 표기된 3글자 문장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번역된 설문해자 관련 책 ‘설문해자주(注) 부수자 역해’의 표지.
설문해자는 그 영향이 커서 이를 해설하고 주석(註釋)을 붙이는 학문 또한 거대하다. 그중 오똑한 것이 청(淸)나라 단옥재(段玉裁·1735∼1815)의 ‘설문해자주(注)’다. 이 책은 글자 풀이에 일일이 반절법 표시를 달았다. 가령 칼날 인(刃)자 말미에 이진절(而振切)이 붙은 것처럼. 刃은 ‘而와 振의 반절’로 읽는다는 뜻이다.

이 책 중 부수자(部首字) 540여개를 번역한 ‘설문해자주 부수자역해’(염정삼 譯·서울대출판부)가 얼마 전 출판됐다. 허신이 처음 540여개 부수로 구분한 것이 청대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214개로 정리됐다. 그게 한 일(一), 선비 사(士), 마음 심(心) 등 지금 우리가 쓰는 부수의 숫자다. 이렇게 설문해자는 한자처럼 동아시아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사족(蛇足)

중국 관광객이 늘면서 벽중서(壁中書) 얘기가 인터넷에서 자주 눈에 띈다. ‘벽 속의 책’이란 뜻이다. 산둥성 곡부(曲阜·취푸)의 공자사당 ‘공묘(孔廟)’에 이 벽이 있다. 공묘는 공자가 세상을 뜬 후 노(魯)나라 군주 애공(哀公·재위 BC 494∼468)에 의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공벽(孔壁)이라고도 하고 노벽(魯壁)이라고도 하는 이 벽 안에 진시황(BC 259∼210) 시절 분서를 피하기 위해 공자 후손들이 책을 숨겼던 것이다.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은 역사상의 개념인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관련된 얘기다.

한무제(BC 141∼87) 때 그 벽에서 책들이 발견됐다. 이후 경서(經書) 연구가들 사이에 금고문(今古文) 논쟁이 일었다. 고고학적 의미나 의의(意義)뿐만 아니라, 옛[고(古)] 문자와 지금[금(今)] 문자가 서로 달라 생기는 여러 해석의 갈래가 토론과 연구의 주제가 된 것이다. (중국의) 문자가 시기나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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