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의 민속에는 생사와 건강, 장수를 수저와 연결짓는 비슷한 인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떠먹는 수저를 생명과 건강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이다. 흔하게 접하는 물건에 옛사람들이 느끼고 깨친 슬기가 담겨 있다.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잘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의 자취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 우주의 오묘한 진리까지 깨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가 낸 ‘동아시아의 부엌: 민속학이 드러낸 옛 부엌의 자취’는 부엌과 그 안의 각종 기물을 통해 3국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식 체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각국의 고고학 성과를 담았고 현지 조사 자료와 신화, 민담, 문학작품 등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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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주 시대의 솥 내부에 외적을 물리친 장수의 공을 찬양하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솥은 공덕을 찬양하는 매체로도 사용됐다. 눌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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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의 이족이 ‘제화절’(祭火節·2월3일)에 마을 신목에 제사를 올린 다음 통나무를 비벼서 일으킨 불을 나누어주고 있다. 눌와 제공 |
조리도구의 대표 격인 솥에는 제법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다. 솥은 왕권과 나라의 상징이었다. 중국에는 황제가 둘레에 용과 온갖 동물을 새긴 높이 한 길 세 치에 곡식 열 섬이 더 들어가는 큰 솥을 구워 하늘의 신과 백성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다는 신화가 전한다. 솥이 권력의 향배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솥을 늘어놓고 음식을 먹는 수가 제한돼 있었다. 천자는 9개의 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제후는 7개, 대부(大夫)는 5개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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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에 서 있는 솥의 모습. 한국, 중국, 일본에서 솥은 종종 왕권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눌와 제공 |
일본에서는 솥은 신의 뜻을 캐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솥을 받드는 신사가 전국에 10곳이 넘는데, 이 중 시마네현의 이즈모신사에 딸린 ‘한조신사’는 한국에서 건너간 솥을 모신다. 솥은 형벌의 도구로도 인식되었는데, 일본의 가스카신사에는 사람들을 지옥의 큰 가마솥에 찌는 장면이 담긴 기록이 전한다. 솥 속의 사람들은 현세에서 저지른 악업 때문에 영원히 솥에서 나오지 못한다.
책은 이외에도 한·중·일 3국에서 전하는 조왕, 그릇, 박, 화덕 등의 민속학적 의미를 비교하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해당 물건에) 깃든 뜻을 캐고 새겨서 어떤 것이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살폈다”며 “한자를 쓰는 같은 문화권에서 말은 달라도 적은 글자만 익히면 간단한 의사를 주고받는다. 세 나라 문화는 한 그루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서문에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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