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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웃으며 지금 사회에 쌓인 울분 없애자는 뜻”

입력 : 2015-05-06 20:56:27 수정 : 2015-05-07 11: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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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전’ 기획한 엣나인필름 주희 총괄이사
“‘힘을 내요, 위를 봐요, 포기하면 안 돼요. 우린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후반부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스마일 어게인!’, 다시 한번 웃어 보이며 이 시국을 이겨내자는 것이죠.”

영화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 주희 총괄이사는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 탓에 우리 사회 전반에 울분이 쌓여 있는데, 같이 울어주고 위로하려면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채플린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따뜻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채플린의 영화들은 지금 상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80년 전 작품들을 오늘날 세상에 내놓아도 손색없이 통한다는 점이 놀랍죠. 영원한 ‘명작’으로 손꼽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이유예요.”

중절모와 콧수염, 폭이 넓은 바지와 커다란 구두, 지팡이…. 채플린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의 영화를 온전히 관람한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의 격언을 쉽게 인용하지만 어떤 영화적 경험들이 쌓여 이 말이 완성되었는지에는 무관심하다. 그의 영화들을 ‘제대로’ 만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주 이사는 채플린의 작품 17편을 다시 들여왔다. 그의 장편 10편 모두를 가져와 풀어놓기는 이번이 국내 처음이다. 지난달 시작한 ‘찰리 채플린 기획전’을 통해서다.

“1년 내내 그의 영화를 소개할 겁니다. 아이디어를 행동에 옮겨 기획할 당시 다들 우려하면서 무슨 객기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지방순회 상영도 해가며 내년까지 이어갈 계획입니다.”

짧게 반짝 알리다가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겐 찰리가 필요한 시점이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캠페인처럼 지속적으로 널리 홍보하겠다는 방침이다.

“할리우드 대작 ‘어벤져스’시리즈에 열광하는 요즘 젊은 관객들이 과연 흑백 고전영화를 볼 수 있을까, 보러 오기나 할까 등도 따져 봤어요.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는 한 작품을 보고 나면 다른 작품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과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기획전은 당장 눈앞의 돈을 벌겠다고 달려든 일이 아니예요. 수익성만 챙기려는 획일적인 상영 시스템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영화를 배려하는 관람 문화를 정착시켜 보자는 시도입니다. 다행히 이러한 기획 의도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어요.” 

<<사진 : ‘찰리 채플린 기획전’을 마련한 주희 이사는 “영화 일이 힘들지만 버텨내는 건 좋은 작품들을 소개할 때 느끼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상배 선임기자>>

주 이사는 오케스트라나 피아노 협연 등 공연과 영화 상영이 어우러지는 행사도 준비 중이다. 6월4일부터 닷새 동안 열리는 무주산골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채플린의 단편 ‘유한계급’을 골랐다.

주 이사의 기획력과 결단, 그리고 일을 추진하는 ‘뚝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1970년생 개띠인 주 이사가 누구던가. 1980년대 초·중반 어린이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았던, 지금도 40대 남자들의 가슴 속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아닌가. “커가면서 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쓸려가는 것 같아 고민 끝에 연기자의 길을 접고 유학을 떠났다”는 주 이사는 일본대 영화학과에 재학하며 생활비까지 포함된 국비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에 매진했다. 석사를 마치고 이론평론과정에 재미를 붙인 그는 대상포진을 앓아가면서까지 밤낮없이 공부한 덕에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다.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도쿄에 머물다 귀국한 뒤 지금의 직장을 택했다.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한 영화를 내걸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다. 한때 화제를 모은 ‘핑크 영화제’도 그가 기획했다. 일본에서 남자들이 보는 에로영화를 한국에서 대낮에 여자들만 모여서 당당하게 관람하게 하는 역발상이 먹혔다. 2007~2009년 3회를 열었지만 한·일관계 악화 등의 분위기 탓에 중단했다. 

이번 기획전의 추천작을 물었다. “물질만능주의에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그린 ‘시티라이트’를 꼭 챙겨 보세요. 연민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고, 보는 동안 울지 않을 수 없는 영화죠. ‘모던 타임즈’는 8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는지, 사회를 보는 시선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력이 놀라워요. ‘위대한 독재자’는 할 말 다하는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고전은 한 번 봐서는 잘 몰라요.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니깐. 숨겨놓은 영화적 은유를 찾아내는 재미가 큽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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