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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을 지낸 동산 스님. |
30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은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을 주지실에서 반갑게 맞아줬다. 범어사는 물론 대한불교조계종의 기틀을 놓은 동산 스님(1890~1965)의 열반 50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동산 스님이 누구인가. 범어사 뒤 뜰을 거닐던 중 ‘댓잎 소리에 깨쳤다’는 분이 아니던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용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한국불교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되살리려는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서 헌신했다, 종정을 세 차례나 지내며 종단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우뚝 세워놓은 인물이다. 이뿐인가. 성철, 지효, 지유, 능가, 고산, 광덕 등 조계종의 기라성 같은 수행자들을 길러 낸 선지식이기도 하다. 열반 50년이 지났음에도 ‘잊혀진 인물’이 아닌 ‘가슴에 살아있는 인물’로 조명하고 있는 손상좌(손자 격)들의 열정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는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장 수진 스님, 범어사 승가대학장 용학 스님이 배석했다. 모두 동산 스님의 손상좌들이다.
“범어사는 동산 스님의 정신이 흠뻑 배인 곳이죠. 6.25전쟁 때는 피란민이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동산 스님이 극진히 대접했어요. 스님은 늘 ‘어려워도 노나 먹자’ 주의였어요. 그래서 범어사는 나눔의 정신이 지금도 강합니다.”
수불 스님은 지긋한 눈으로 동산 스님을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범어사는 6.26 때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임시 안치됐던 유서 깊은 장소다. 이후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됐다. 동산 스님이 생전에 길러낸 제자들이 재가상좌를 포함해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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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
일순간, 수불 스님의 눈이 빛났다. 목소리도 또렷했다. 동산 스님은 생전에 누가 부르면 가깝든, 멀든 달려가 설법을 들려줬다고 한다. 또한 범어사에 주석할 때 가람불사보다, 인재불사에 더 힘을 쏟았다. 사람을 키우는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성철 스님이 1993년 11월에 열반하셨는 데, 그해 5월쯤 범어사에 오시어 동산 스님 부도탑 앞에서 땅에 엎드려 3배를 하셨지요. 성철 스님께서 당신의 회향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동산 스님이 잠시 해인사에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그때 성철 스님이 해인사로 출가해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선(禪)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성철 스님이 열반을 앞두고 동산 스님을 찾은 것은 은사 스님을 늘 잊지 않고 마음에 두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수불 스님의 말이다. 큰 틀에서는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없었다.
“종단 내에서 동산 스님을 ‘설법제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설법을 잘 해서라기보다, 어려운 절이나 어려운 사람들이 설법을 청해도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설법을 하러다니던 정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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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스님의 손상좌들. (왼쪽부터) 수진 스님, 수불 스님, 용학 스님. |
“동산 스님에게는 부처님의 법을 곧추세우는 것이 곧 나라사랑이었습니다. 스님은 열반하던 날 아침까지 손수 마당을 쓰셨어요. 그리고 저녁에 잠자듯이 열반했지요.”
수불 스님은 동산 스님의 낡은 가사 등 몇 점의 유품이 범어사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고 했다. 일주문을 지나 나타나는 불이문(不二門) 주련(柱聯)에는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와 ‘神光不昧萬古輝猷(신광불매만고휘유)’라는 동산 스님의 친필 글귀가 쓰여 있어 세월을 넘어 스님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이 문안에 들어 올 때는 안다는 생각을 가지지 마라’ ‘신비스러운 빛이 어둡지 않아서 오랫동안 길이 빛나도다’. 자신을 갈고 닦는데 필요한 가르침들이다. 동산 스님은 인재불사를 우선시해 가람불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손상좌대에 와서 수불 스님이 범어사에 강원과 율원을 설치해 총림으로 사격을 높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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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 스님 일행이 동산 스님의 부도탑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
부산=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동산 스님 열반 50주기 추모행사 어떤 내용인가>
세미나, 사진전, 추모다례제 등 다채로워…사진집도 출간
범어사가 불교신문사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동산 스님 열반 50주기 추모행사’는 크게 추모다례제, 문도 교학대회, 사진전과 사진집 발간, 라디오 드라마 제작 등으로 나눠진다.
추모다례제는 5월 11일 오전 10시30분 범어사 보제루에서 헌향, 헌화, 헌다 등 순으로 전통방식에 따라 열린다.
동산 스님 문도 교학대회(세미나)는 5월3일 오후1시30분 범어사 설법전에서 열린다. 이날 세미나는 ‘범어사와 동산 문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나갈 길’을 주제로 조계종 원로의원인 도문 스님이 기조발제한다. 이어 전 조계종 법규위원장 천제 스님, 범어사 승가대 교수 홍선 스님,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법상 스님,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 김광식 동국대 교수 등이 세부발제자로 참여한다. 사회는 부산 동명불원 주지 화랑 스님이 맡는다.
사진전은 ‘불일증휘(佛日增輝)하는 법륜(法輪)이 상전(常轉)하기 바라노라’ 주제로 5월3~11일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다. 동산 스님의 1930~60년대 생활 모습과 범어사 풍광 등 80여 점이 전시된다. 사진집은 동산 스님과 범어사 관련 사진과 주요 자료 등 300여 점을 정리해 오는 8월15일 발간할 예정이다.
불교신문에서는 동산 스님의 삶과 수행 모습을 6회로 나누어 지난 4월4일부터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데, 5월9일 최종회가 나온다. BBS 라디오에서는 동산 스님의 일대기를 드라마 CD 등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복을 구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러한 단순하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다…우리가 복을 구하더라도 복을 받을 행동을 해야 되는 법이니, 실질적으로 복을 받을 신앙생활과 수행을 쌓아야 되겠다.”
한국불교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자유인 하동산. 그의 법의 향기가 범어사 경내에 그윽하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동산 스님 주요 어록>
“천상(天上)에 일월(日月)이요 암야(暗夜)에 명등(明燈)인 불타의 교단이 세상에 출현하야 국가에 복전(福田)되고 민중에 안목(眼目)되야 불일(佛日)이 증휘(增輝)하는 법륜(法輪)이 상전(常轉)하기를 바라마지 않노라.”
“무슨 종교든지 일체 중생의 고원(苦源)을 낙원으로 인도하여 현 세계를 광명세계로 전화(轉化)함이 원리일 것이다. 그러면 고원과 낙원을 추궁(推窮)치 아니하며 아니 된다.”
“부처님 원리는 일체가 유심(唯心)이다. 이 유심의 근본은 불(佛)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요, 물(物)도 아니요, 심(心)도 아니다.”
“성품을 보면 이것이 부처요, 성품을 보지 못하면 중생이니라.”
만일 중생성을 여의고 따로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중생성이 곧 불성인 것이다. 성품 밖에 불(佛)이 없고, 불(佛)이 곧 이 성품이니 …”
“일체사(一切事)는 불타정법(佛陀正法)에 따르기만 하면 옳게 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사부중(四部衆)은 위법망구(爲法忘軀)의 본연대도(本然大道)에 나서라.”
“복을 구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단순하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다. 불교는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자기가 지은 인과의 업보로 설명하니, 범부(凡夫)들이 불전(佛前)에 한두 번 불공이나 하고 시주나 조금 한다고 그 죄가 없어지고 대뜸 복을 받겠는가? 우리가 복을 구하더라도 복을 받을 행동을 해야 되는 법이니, 실질적으로 복을 받을 신앙생활과 수행을 쌓아야 되겠다.”
“자성(自性)은 진실하여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며, 법(法)은 곧 마음의 뜻이다. 자심(自心)이 보리(菩提)이며 자심이 열반(涅槃)이니 만일 마음 밖에 부처와 보리를 가히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옳지 못한 것이니, 그렇다면 부처와 보리가 다 어느 곳에 있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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