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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작된 '근로자의 날'… 그 진정한 의미는

입력 : 2015-05-01 06:00:00 수정 : 2015-05-01 10: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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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일명 ‘메이 데이(May Day)’로 불리며, 달력에 공휴일로 표시되지 않아 쉬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휴일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날이지만, 근로자의 날은 ‘근로자’라면 한 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 넘어갈 만한 중요한 기념일이다.

▲ 근로자의 날은 어떻게 시작됐나?

‘근로자의 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달력을 아주 오래전으로 넘겨야 한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사회·정치구조를 바꿔놓으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했고, 노동자 계급을 단순 임금 노동자로 치부하고 이들을 착취 하는 자본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미국은 호황을 이뤘다. 그러나 이면에는 ‘노동력 착취’와 자본가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불공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적은 보수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은 결국 폭발했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근무’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파업 과정에서 경찰 탄압으로 소녀를 포함한 노동자 6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격분한 노동자들은 한데 뭉쳤고, 3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노동자들이 집회를 여는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 하나가 더 터지고 만다. 5월3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누군가 폭탄을 던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경찰관과 노동자 등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바로 ‘헤이마켓 테러(Haymarket affair)’ 사건이다.

투쟁을 이끈 것으로 의심돼 경찰에 체포된 노동자 8명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실제 테러와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수감된 이들 중 4명은 교수형, 1명은 자살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남은 3명은 나중에 다행히 석방됐다. 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헤이마켓 테러는 노동자들의 운동을 탄압하던 자본가들의 소행이었다.

3년 뒤인 1889년 7월. 유럽 노동자들은 노동자 국제 투쟁 조직인 ‘제2인터내셔널’을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했고, 억울하게 테러범으로 몰려야 했던 ‘시카고 8인’을 기리기 위해 5월1일을 노동절로 선포했다. 1년 뒤인 1890년 5월1일, 처음으로 노동절 행사가 열림으로써 우리가 아는 ‘근로자의 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모든 나라가 근로자의 날이 같은 건 아니다?

날짜는 5월1일이지만, 현재 몇몇 나라의 근로자의 날은 이날이 아니다.

미국은 처음에는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으나, 이를 빌미로 한 시위가 잇따라 발생하자 날짜를 9월 첫째주 월요일로 옮겼다. 그대신 미국은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했다.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9월 첫째주 월요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다. 뉴질랜드는 10월 넷째주 월요일, 일본은 매년 11월23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 우리나라 근로자의 날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 ‘근로자의 날’은 1923년부터 시작됐다. 날짜도 5월1일로 똑같았다.

도입 당시 ‘노동절’로 불렸던 근로자의 날은 일제강점기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 노동 총연맹’이 노동자 2000여명을 모아놓고 치르면서 처음 시작,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어졌다. 당시 총연맹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그리고 ‘실업 방지’ 등을 요구했다.

해방 후에는 좌익세력과 노동자가 주를 이룬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주도 아래 노동절 기념행사가 이어졌다. 특히 해방 후 처음 맞이한 행사에는 노동자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색을 띤다는 이유로 전국평의회가 무너진 뒤, 미군정을 등에 업은 대한노총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5월1일이던 노동절은 3월10일로 옮겨졌고, ‘근로자의 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3월10일은 대한노총 결성일이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노동절이 공산당의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날짜를 바꿔 참된 명절이 되도록 하라는 명령을 대한노총에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날짜와 이름이 바뀐 건 모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노동계는 날짜를 원래대로 돌려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1989년에는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가 ‘메이 데이 100주년’을 앞두고,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하자고 소리높여 외치기도 했다.

1980년대 노동계 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대한노총이 주도한 행사(3월10일)와 예전의 메이 데이를 복원하자는 행사가 동시에 이뤄지는 이원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근로자의 날은 5월1일로 제자리를 되찾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세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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