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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有 상태로 머무는 49일… 마지막날 염라대왕이 심판

입력 : 2015-04-12 22:38:44 수정 : 2015-04-12 2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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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57> 천도재와 위령제 세월호가 우리를 침몰시켜 버린 지 어느덧 1년, 전통 상장례(喪葬禮)에서는 이때 소상(小祥), 즉 1주기(週忌) 제사를 모신다. 천도재를 열어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가도록 산 자들은 마음을 다한다. 온통 꽃 피는 소리 요란한, 그래서 더 잔인한 4월이 다시 왔다.

천도재는 우리 전통 무속(巫俗)과 중국의 의례가 습합(習合)된 불교의례다. 한국적 불교의식이라고나 할까. 민속의 보물창고인 진도 씻김굿이나 중국이 기원인 수륙재(水陸齋)와도 뜻이 통하고 형태가 흡사한 의식이다. 때가 때인 만큼 수많은 천도재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최근에는 한 매체에서 이 같은 기사를 보았다.

진도씻김굿 공연 모습. 씻김굿은 천도재나 수륙재처럼 죽은 자의 혼을 달래서 극락세계로 보내기 위한 큰 굿이다.
전남도청 제공
‘천주교는 팽목항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하며 불교는 침몰 해상 방문 후 천도재를 올린다. 1주기 전날인 15일에는 팽목항에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펼쳐진다.’

추모미사나 천도재는 ‘위령제’ 즉 제사(祭祀)다. 그 제사를 천주교에서는 ‘추모미사’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천도재’라고 한다. 인용 기사는 그 ‘개념어’들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일부 기사에서는 ‘천도재’만이 아니라 ‘천도제’라는 표현도 볼 수 있다. 재(齋)와 제(祭)를 구분하지 않는 인식이 빚은 오류로 본다. 대략 네다섯 중 하나 꼴로 천도제다. 한자표기가 없으니 ‘제’ 아닌 ‘재’라고 일러줘도 구분해 알 방법이 없을까? 같은 오류가 계속된다. 재(齋)는 명복(冥福)을 비는 불교의식이다. 목욕재계(沐浴齋戒)라고 할 때의 재(齋)자다. 가지런히 한다는 뜻의 제(齊)자와 보일 시(示)의 합체자다.

천도재(薦度齋)는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는 의식이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챙기는 49재는 이 천도재 중 한국인들에게 가장 비중이 큰 장의(葬儀) 일정이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지만 49재까지는 지켜야 한다’라고 하는 정서적 시한(時限) 같은 개념이기도 하다. 칠칠재(七七齋)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은 사후 7일째 날부터 49일째까지 7일마다, 그리고 100일과 1년, 2년째 되는 날 이렇게 10차례 명부시왕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 이 중에서도 49일째 날은 명부시왕 중 ‘지하의 왕’인 염라대왕이 친히 심판한다하여 49재를 가장 중요시한다.

명부시왕(冥府十王)은 죽은 자를 심판하는 불교의 10명의 왕이다. 명계(冥界)나 황천(黃泉)이라고도 부르는, 죽은 자의 영혼이 도달하는 이 명부는 중국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은 공간이다. 시왕들은 심판(審判)하지만, 정작 명부의 중요한 존재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다. 심판받은 중생의 영혼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이 자비의 화신(化身)이 여기 있어 큰 균형을 이룬다.

천도재는, 인간이 윤회(輪廻)와 업(業)의 존재라는 뜻에 바탕을 둔 불교 의례다. 인간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중유’(中有)의 상태로 49일간 머문다고 한다. 이때 불보살의 원력(願力)으로 업을 씻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의식인 것이다. 중유는 사후부터 다음 세계에 태어날 때까지의 존재 형태다. ‘업’은 인간이 생전에 지은 여러 일의 모음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도 팽목항처럼 여태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천도재는 절의 명부전에서 주로 치른다. 이 의식 중 영산재(靈山齋)는 특히 장엄하다. 이 장엄은 다음 세상에 태어날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이 의식에 모여든 산 자들에게 죽음의 의미와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장치’이기도 하다. 저절로 두 손 모으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상태로 이끄는 의식인 것이다. 삶이 그런 만큼 죽음 또한 꽃 같지 않겠는가.

제사는 유교의 조선시대를 지나며 우리 겨레에게 조상이나 선대(先代)의 임금 등을 향한 배례(拜禮)의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당초에는 여느 종교나 무속과 같이 대자연 또는 신(神)과 같은 초월적(超越的) 존재에 대한 우러름과 두려움 즉 경외(敬畏)의 표현이었을 터. 동아시아 문자의 첫 형태는 이런 추측을 더 가멸게 한다.

천도재나 제사의 齋와 祭 두 글자에 다 들어있는 부속품 보일 시(示)자를 주목하자. 示의 갑골문은 제물(祭物)을 올려놓기 위한 돌과 그 돌을 받치는 돌의 그림이다. 누구에게 제물을 보이고자 함이었나? 옛 사람들의 시선은 무엇을 향했을까? 상상해 보자면, ‘신에게 보이려는 것’이고, 여기서 ‘보여주다’는 뜻이 이 그림의 의미로 남게 됐으리라. 그 후로도 그 글자에는 늘 ‘신’의 존재가 안겨 있다. 神, 齋, 祭에 포함된 초월자 또는 벼락, 비와 같은 대자연의 흔적이다. 기도(祈禱)의 두 글자에도 示가 들어있다. 기도는 신에게 하는 것이다. 축복의 복(福), 재앙 화(禍)도 신의 영역이기 쉽다. 이 示자가 포함된 글자를 해석하는 비방(秘方)이다. 하나 알면 100개를 깨우치는, 재미있는 문자의 세계다.

슬픈 4월의 이 ‘천도재, 천도제’ 해프닝은 문득 우리에게 글자와 뜻에 관한 통찰력을 준다. 글자의 뜻이 뚜렷해야 혼령들도 제 몫을 혼동하지 않을 터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 사족(蛇足)

제(祭)는 고기를 뜻하는 달 월(月) 비슷한 기호( )와 손(hand)을 뜻하는 우(又), 보일 시(示)자가 합쳐진 글자다. 고기를 손에 들고 제단에 올려 신에게 보이는 것이다. 

제사 제(祭)자의 갑골문. 고기 육(肉), 손 우(又), 보일 시(示) 3자의 합체다. 이락 著 ‘한자정해’ 삽화 인용
신을 조르는 제사의 본디 모습이겠다. 최소한 3500년 전의 일, 요즘 종교행사 의전(儀典)처럼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고 탓하지 말 것이다.

한자가 만들어지는 방법 중 하나로 회의(會意)가 있다. 뜻[意]을 모았다[會]는 것이다. 祭처럼 여러 글자를 모아 그 뜻으로 새 글자를 이룬 것을 말함이다. 더할 가(加)처럼 힘 력(力)과 입 구(口)의 두 글자의 조합인 경우가 많다. 한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처럼 누군가가 집중적으로 단시간에 만든 문자가 아니다. 처음 여러 그림이 그려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그림(기호 문자)들을 합쳐 모양과 소리와 뜻을 오래 빚은 것이 한자다. 처음 기호인 물건의 그림 상형(象形), 일을 가리키는 지사(指事), 뜻의 모음 회의(會意), 모양과 소리로 글자를 합쳐 새 글자 만드는 형성(形聲) 등 4가지로 한자의 구성을 설명한다. 그 밖의 전주(轉注)와 가차(假借)는 이미 있는 글자를 널리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공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고, 글자들의 형태를 살피니 대개 이 네 패턴으로 구분되더라 하는 뜻이다. 그림(미술)은 자주 보아야 안목이 트인다. 그림으로 빚은 글자인 한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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