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기준 한국 정부의 ODA(공적개발원조) 총액은 약 2조원. ODA워치는 원조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한국에 필요한 단체다. 이곳에서 7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태주(55) 대표다. 그는 인류학자로서 한성대학교 교수직도 맡고 있지만 국제개발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이 대표는 “인류학과 개발학은 분리할 수 없다”며 “빈곤국에 개발지원이 잘 이루어지려면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 등 인류학적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학이 활발한 영국을 보면 국제개발 분야 종사자들은 대부분 경제학자·정치학자·인류학자로 구성됐다.
이 대표는 1989년 처음 개발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이후 정부는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외봉사단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1989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최초로 해외파견봉사단이 꾸려진다.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때 봉사단 지도교수로 들어가 젊은이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네팔 등으로 파견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었다”며 “당시 신혼이었는데 집에도 안 들어가고 일에 빠져 지냈다”고 웃었다. 이후 봉사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늘자 정부는 1991년 4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만들고 그가 있던 해외파견봉사단을 흡수한다. 이 대표는 KOICA에서 근무하며 해외파견봉사단 운영, 해외사무소 설치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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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주 ODA워치 대표는 지난 19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대외원조 시) 한국은 개도국처럼 식민지, 전쟁, 분단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을 보라’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제대로 예산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
ODA워치에는 변함없는 운영원칙이 있다. 정부·기업으로부터 일절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500여명의 개인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돈 등으로 단체를 운영한다. 일일 호프 등을 통해 기금도 모금한다. 그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 제대로 된 감시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ODA워치는 사무총장 1명과 상근간사 3명, 자원활동가 200여 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년은 ODA워치에 의미 있는 해다. 정부가 국제원조투명성기구(IATI) 가입을 약속한 해다. 한국이 IATI에 가입하면 대외원조 사용처 등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만큼 투명성이 높아진다. ODA워치는 국내외 국제개발단체들과 함께 3년 동안 정부의 IATI 가입을 요구했었다. 이 대표는 “이제는 독립된 전문가 집단이 객관적으로 정부의 대외원조 실태를 평가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해 했다. 그렇다고 이 대표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ODA워치는 최근 정부의 공적개발원조 중점협력국 선정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148개 원조 대상국 중 26개 나라를 중점협력국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지난 3일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 26개 중점협력국 중 12개 국가가 부적절하게 선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는 “콜롬비아 같은 고소득 국가나 경제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페루 등이 선정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다시 5년간 진행될 원조사업을 위한 2차 중점협력국 보고서에서 문제가 됐던 나라들이 큰 변화 없이 재선정됐다. 그는 “시민사회와 논의도 없었고 감사원 지적사항에 대해서도 별다른 시정조치가 없었다”며 “대외원조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대외원조 환경은 열악하다. 특히 전문가가 부족하다. 이 대표는 “1세대를 한비야 키즈, 2세대를 반기문 키즈라고 한다면 지금 3세대는 김용(세계은행 총재) 키즈라고 한다”며 “석사 이상까지 받은 국내 젊은이들이 국제개발 분야에 문을 두드리지만 고용은 한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외원조 분야를 KOICA,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정부에서만 다루지 말고 민간영역까지 넓혀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외원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주문했다. 이 대표는 “이제 한국은 국제사회와 협조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아프리카 등에 가면 몇 센트짜리 약을 못 먹어서 사람들이 죽는 등 정말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개도국처럼 식민지, 전쟁, 분단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을 보라’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대외원조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들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민을 넘은 세계시민의 길. 이 대표는 ODA워치와 자원활동가 200여 명, 그리고 자신들을 후원하는 5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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