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이 아니다
최근 오랜만에 단성사 소식을 접했다. 종로 3가에 위치한, 서울 시내 대표 영화관이었던 단성사가 경매 끝에 낙찰됐다는 기사를 통해서다.
2년 7개월 전, 경매 시장에 나온 단성사 건물은 3차례 유찰 끝에 지난 12일 575억원에 최종 낙찰됐다. 관련 기사들에는 낙찰가에 대한 평가, 이후 수익 전망 등이 곁들여졌다. 또한 ‘최초의 영화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역사가 깊은 영화관이라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 기사들을 보며 여러 생각들이 겹쳤다. 영화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최초의 영화관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등었고, 비록 예전 모습은 사라진 채 지하 4층에 지상 10층의 빈 건물이지만 여전히 단성사 건물로 통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 칼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극장傳’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라진 옛 영화관들’을 다룬 적이 있다. 이번 글은 아마도 앞선 글의 1.5탄 쯤 될 것 같다. 단성사를 비롯해 그 시절 그 영화관들은 어쩌다 사라지게 된 걸까.
우선 어쩌다 단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을까. 의외로 대다수의 기사에서 이런 표현을 써서 사실 좀 놀랐다. 1907년 영화관이 아니라 공연장으로서 문을 연 단성사는 그 시절 다른 공연장처럼 이따금씩 수입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다가, 1913년부터는 영화 상설관으로, 1918년부터는 영화 전용관으로 운영됐다.
단성사가 생기기 전인 1903년부터 영화 상설관으로 운영되던 ‘동대문활동사진소'(이후 광무대)나 1910년부터 운영된 ‘경성고등연예관’ 등이 있었으니, 단성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상설관이나 영화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마도 비록 수년째 영업을 중단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영화관들 중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라는 의미로 얘기되던 것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역사 속에서 ‘최초’ 라는 타이틀은 기준에 따라 다르게 부여될 수 있다. 초기 한국영화들도 남아있지 않고, 영화관이나 영화인 관련 자료 역시 마찬가지여서 앞으로 추가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단성사가 최초의 영화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단성사의 역사적 가치마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영화관 단성사는 단성사 역사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1993년 ‘서편제’(감독 임권택)를 보기 위해 건물 밖에서 줄을 길게 섰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 정말 많았다. 당시 한국영화 역사 상 첫 서울관객 100만명을 넘긴 영화가 개봉된 영화관이 되었지만, 이미 위기 상황은 다가오고 있었다. 서울 도심 종로와 을지로 등지에 위치한 1000석 이상의 오랜 영화관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강남 등 서울 부도심, 변두리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서울 도심 지역 분위기가 변화되는데, 1980년대에 이르면 유동인구도 줄었고, 영화 관객도 줄었다.(당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것도 영화 관객 감소의 큰 이유였다) 게다가 1981년에는 공연법이 완화되어 영화관 신축이 쉬워지고 개봉관 기준도 사라져 좌석 300석 이하의 소극장은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개관될 수 있게 된다. 마침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던 서울 부도심, 변두리 지역에 신축 영화관 20여 개가 들어서는 데는 불과 1년이 걸렸다.
그래도 규모가 작은 영화관들이다 보니 주로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왔다갔다 하며 영업을 했는데, 1987년 영화법 개정으로 영화시장이 개방되면서 상황은 변한다. 얼마 전 ‘영화관에 뱀이 풀렸던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도 다뤘지만, 1986년 영화법 개정으로 미국 메이저 영화사의 영화들이 국내 수입업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배급되기 시작했을 때, 도심 대규모 영화관들은 직배 영화 상영을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적어도 한 동안은 오랜 공생 관계를 유지했던 영화제작/수입자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이때 직배사들이 취했던 차선책은 바로 여러 소극장에서 동시 개봉을 하는 것이었다. 도심에 있는 1000석 이상의 기존 영화관을 잡지 못한 대신, 300석 규모의 영화관 여러 곳을 확보하는 식이었다. 기존 도심 지역 이외의 소극장들로 관객들이 몰리면서 이 영화관들의 개봉관으로서의 입지도 확실해진다.
영등포에 있던 명화극장(1982~2002), 신촌의 크리스탈극장(1985~2007, 1994년부터는 그랜드시네마), 브로드웨이극장(1989~현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 씨네하우스(1985~2002), 동아극장(1985~2004, 2000년부터 주공공이, 현 CGV 강남) 등 1980년대 개관한 영화관들을 기억하시는지? (이들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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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새로 지어진 단성사 건물(2005년 모습) |
개봉관들이 많이 생기면서 오랫동안 서울 지역 개봉관으로 독점적 역할을 해오던 십여 개의 도심 영화관들이 어려움을 맞는 것은 당연했다. 영화 한 편이 영화관 한 곳에서만 개봉되는 시절이 끝난 것이다.
물론 이 시기 생간 영화관들 역시 2000년대 초반이 되면 기존 영화관들과 함께 위기를 맞게 된다. 1998년 문을 연 CGV 1호점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은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확대되기 때문이다. 기존 영화관들 중 단성사나 명보극장, 대한극장, 서울극장, 피카디리극장, 중앙극장 등은 2000년대 전후 멀티플렉스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내부 수리를 통해 기존 1천 석이 넘었던 상영관을 여러 관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1958년에 개관된 대한극장은 2001년에는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성사 맞은편에 1958년 개관된 피카디리극장 역시 2004년에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재개관되었고, 2010년부터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로 운영되고 있다. 1969년에 개관된 허리우드극장은 1997년 기존 상영관을 3개로 나누어 현재는 허리우드 실버영화관, 서울아트시네마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3월 말로 10년 동안의 허리우드극장 시절을 마무리하고, 서울극장(1958~ )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문을 닫은 곳도 있다. 1922년 개관해 1998년 3개 상영관으로 개축되고, 2000년에는 2개관이 증설되며 중앙시네마로 이름을 바꿨던 중앙극장은 2009년 오랜 주인이 바뀌었고, 2010년에는 결국 폐관됐다. 곧 건물도 헐렸다.
단성사도 1998년 2관을 개관하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2001년 소리 소문 없이 기존 건물은 헐리고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뒤늦게 철거 소식이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2003년 지금의 건물이 완공되어 단성사라는 이름도 유지하며 스크린 7개를 갖춘 멀티플렉스로 재개관되었으나 나머지 층의 상가 분양에 어려움을 겪으며 2008년에 부도 처리되어,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매각 후에도 영화관 영업은 한동안 지속되었지만 곧 중단되었고, 2010년 건물 전체는 리 모델링을 이유로 높은 펜스에 둘러싸였다. 그리고 2012년 경매에 넘어갔고, 얼마 전 또 다른 주인을 만났다.
단성사 건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될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시 영화관 영업을 시작할지, 아니면 그저 건물 이름으로만 남을지, 아니면 그나마도 아니어서 중앙극장,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아세아극장, 크리스탈극장, 씨네하우스 등처럼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지역 분위기와 영화 관람 형태 등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옛 영화관들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사실 어린 시절 살던 집 동네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100년 역사가 넘는 영화관 하나쯤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현실감각 없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1936년 영화관 명치좌로 개관돼 시공관, 국립극장, 금융사 등으로 이용되다 현재는 ‘명동예술극장’으로 운영 중인 건물이 조만간 100년을 맞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다시 문을 열게 될 단성사 건물에 옛 영화관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조그맣게나마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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