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 튼튼한 사회보장… “희망있는 삶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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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국내 사립 명문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하반기 취업 시즌에 100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단 한 곳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기업들이 유학이나 인턴 경험이 없는 점을 지적하면서 면접에서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2012년 상반기 중국에 있는 한 기업에 취업했지만 향수병에 시달린 나머지 국내 기업의 문을 수도 없이 두드린 끝에 2013년 1월 국내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박씨의 연봉은 세전 3100만원으로 한 달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210만원. 그마저도 학자금을 갚고 월세에 관리비를 내면 박씨의 손에 남는 건 50만원이 고작이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지만 야근이 잦았고, 자정까지 일을 해도 야근수당을 받지 못했다.

통상 3개월씩 쓰는 출산 휴가를 육아휴직까지 얹어서 1년으로 연장한 그 선배는 회사로 돌아온 뒤 왕따를 당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일도 주지 않았다. 박씨는 “회사의 여자 동료가 선배에게 더 싸늘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한 직장의 동료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박씨는 지난해 4월 회사를 그만뒀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했던 그는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를 방문해 그곳의 삶을 엿본 뒤 정착을 결심했다.
핀란드 노동자들은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임금이 높았다. 저축도 더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싱키에 머물며 5개월 동안 입사지원서를 낸 뒤 한 대기업의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한국에서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행복감에 충만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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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국내 취업 환경에 실망해 핀란드로 이주한 박모(26·여)씨가 지난달 20일 수도 헬싱키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신원 공개를 원치 않는 박씨 의사에 따라 뒷모습을 촬영했다. 헬싱키=이재호 기자 |
출근 시간은 오전 7∼8시로 한국에서보다 빨라졌지만 오후 3∼4시 사이에 퇴근할 수 있다. 박씨는 “어학원에 등록해 퇴근 후 핀란드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핀란드의 유연한 근무환경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박씨가 감기 몸살이 들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갔을 때 그의 상사는 “왜 출근했느냐”며 “사원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니 푹 쉬고 완전히 낫기 전까지는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프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핀란드에는 생리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여성이 가정과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잘 돼 있어 출산 후에도 언제든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며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다른 계획이 생기지 않는다면 계속 핀란드에 살 것”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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