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등 선진국 제품이면 무조건 좋다?”
국내 일부 소비자들의 사대주의적인 발상이 한국 유통시장을 이른바 ’호구공화국’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무조건 판매가를 비싸게 책정해 고급 브랜드로 인식하게끔 해야 잘 팔린다”며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려도 비교적 판매가 잘 되기 때문에 주요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가격정책을 이렇게 가져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스타벅스 커피 ▲칠레산 와인 ▲탄산수 ▲소고기 ▲수입 과일 등의 서울 판매 가격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세계 13개국 주요도시에서 농축산물·가공식품 25개 품목, 42개 제품의 물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42개 제품 중 35개 제품이 가격이 비싼 순으로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한국이 가장 비쌌다. 톨 사이즈(355㎖) 기준 한국 가격은 4100원으로 프랑스(4023원), 중국(3679원), 일본(3633원), 네덜란드(3614원) 등을 제쳤다. 국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2007년 이후 7년간 46.4%(1300원) 올랐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가장 저렴한 국가는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1806원이었다.
◆ 스타벅스 커피값, 7년간 1300원 올랐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커피 원두는 최고급으로 사용해도 1kg에 3만원 선이다. 1kg에 140잔 정도라고 하면 커피 원두가격에 물값 및 전기세·인건비 등을 다 합쳐도 2000원이면 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타벅스가 유독 한국에서 고가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스타벅스는 브랜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로 도심 등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 입점,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실제 스타벅스 매장 중 절반 가량이 임대료가 비싼 서울 지역에 몰려있다. 스타벅스가 매년 지출하는 임차료는 약 1000억원에 달하지만, "임대료가 높아 커피 값이 비싸다" 회사 측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살인적인 미국 뉴욕의 임대료가 한국보다 비쌀 리 없는데도 커피값은 한국이 4100원, 뉴욕은 2477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나는 것인데, 다시 말해 임대료가 비싸다는 얘기는 커피값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꼼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브랜드에 현혹돼 '덤태기' 쓰고 있어
스타벅스 코리아는 미국 스타벅스와 국내의 한 대기업이 절반씩 투자한 합작회사다. 여느 커피전문점과는 달리 프랜차이즈 모집을 하지 많고, 전국 700여개 매장을 모두 직접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지난 2013년 영업실적을 보면 매출은 23%가 늘어나 418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29%가 늘어난 321억원 수준이다. 보통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3%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남긴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커피전문점이 급증했는데, 1999년 스타벅스가 국내에 처음 문을 연 이후 수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나 2013년 말 기준 전국의 커피전문점은 1만800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전 통계를 보면 2009년에 5000여개가 있었다. 달리 말해 4년동안 4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한 집 건너 커피전문점이라 할 정도로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정도되면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져 가격이 내려가야 하지만, 스타벅스가 사실상 가격 결정자·선도자 같은 역할을 하면서 도무지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커피를 이렇게 자주 많이 마시는 국민이면 이제 커피 맛을 분간해 낼 때도 됐는데, 아직도 브랜드에 현혹돼 덤태기를 쓰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 칠레산 와인, 4년간 4000원 내렸지만…
칠레산 와인(몬테스알파 까르네쇼비뇽)도 한국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수입량 증가 등으로 백화점 판매가가 2010년 4만7000원에서 작년 4만3000원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가격이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칠레·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엽협정(FTA) 체결로 와인 관세가 사라졌지만, 국내 와인 가격은 여전히 외국보다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주부교실중앙회는 지난해 4월24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예산 지원을 받아 수행한 수입와인·수입맥주의 국내외 가격비교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국내외에서 공통으로 판매되는 수입와인 8종을 대상으로 한 가격비교에서 국내 판매가격은 외국보다 평균 2.9배 비쌌다. 특히 프랑스산 와인의 가격차이가 심했다. 국내에서 평균 15만원에 팔리는 2009년산 샤또 딸보는 외국 가격이 평균 2만7600원에 불과해 무려 5.4배나 비싸게 가격이 책정됐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주로 유통과정에서의 높은 마진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EU·미국·칠레산 수입와인의 세후 수입원가(한병·750㎖ 기준) 는 레드와인이 평균 7663원, 화이트와인이 평균 9093원이었다. 반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평균 시장가격은 레드와인이 평균 6만8458원, 화이트와인이 평균 5만3988원이었다. 레드와인은 원가보다 무려 8.9배, 화이트와인은 원가보다 5.9배나 높게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주부교실중앙회 관계자는 “판매관리비와 물류비용 등을 고려한다고 해도 원가보다 최고 8.9배나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은 다른 분야보다 너무 많은 유통마진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격 조사는 2013년 10월 ▲국내외 백화점 24곳 ▲대형마트 31곳 ▲전문판매점 12곳 ▲해외 온라인 사이트 9곳 등 총 76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외국가격 조사는 미국과 독일·일본·프랑스 등 4개국을 대상으로 했다.

와인 5종을 대상으로 살펴본 국내 유통채널별 가격 차이는 백화점을 100으로 볼 때 대형마트는 88.1, 전문판매점은 88.0 수준이었다. 조사대상 중 칠레산 에스쿠도 로호(2010년산)의 백화점 가격(4만4200원)이 다른 곳보다 52% 비쌌지만, 다른 4종은 유통채널 간 가격이 큰 차이가 없었다. 소비자 인식조사에서는 FTA로 인한 관세철폐가 수입와인 가격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이 25.2%(매우 그렇다 3.9%·그렇다 21.3%) 수준에 그쳤다.
또 탄산수 2개 제품(게롤슈타이너·산펠레그리노)은 2위, 흰우유·미닛메이드 오렌지주스·펩시콜라는 3위에 오르는 등 음료도 전반적으로 한국이 비쌌다.
◆ "올해도 저렴한 삼겹살 먹긴 어렵겠네"
뿐만 아니라 고기(meat)도 국내산과 수입산을 막론하고 한국이 비쌌다. 국내산 소고기 등심과 돼지고기 삼겹살은 한국이 13개국 중 가장 비쌌고, 수입 소고기 등심 가격도 한국이 3번째로 높았다. 실제 삼겹살 값이 계속 치솟고 있다. 올해도 구제역 확산과 돼지고기 이력제 등으로 상승이 예고, 당분간 서민들은 싼값에 삼겹살을 사 먹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14년 12월30일 기준 삼겹살 100g 소매가격은 지난해 12월 평균가격이 2017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9%가량 올랐다. 여름 휴가와 캠핑 등으로 돼지고기 수요가 많아 가격이 급등하는 8월(2051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예년 평균가격은 1300~1700원대를 유지했다. 최근 10년 동안 12월 삼겹살 값이 2000원대인 것은 구제역이 발생해 공급량이 감소했던 2011년을 빼곤 유일하다. 이 같은 가격 상승은 지난해 내내 이어졌다. 100g 소매가격은 1월 1605원에서 출발, 8월 2185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12월 말 1800~2000원대를 유지하면서 2017원으로 마감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삼겹살 값은 보통 여름에 최고점을 찍고 겨울에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난해에는 연말까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삼겹살 가격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수요만큼 공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 업계에 따르면 돼지 사육 마릿수가 축산업계의 모돈 10% 감축운동 등으로 2013년 1000만마리에서 지난해 960만마리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과 조류독감 여파로 수산물과 가금류 수요가 돼지고기로 대체되고, 소고기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돼지고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수입물량 ↑, 수입가격 ↓…판매가 꿈쩍도 않네
이와 함께 수입 과일은 ▲청포도(1위) ▲파인애플·자몽·레몬(2위) ▲오렌지·망고·바나나(3위) ▲체리·키위(4위) 등 조사한 9개 품목 모두 한국이 13개 국가 중 비싼 순으로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특히 지난해 미국산 체리 수입 가격은 2012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19% 하락했는데, 국내 유통업체 소비자 판매 가격은 42.4%나 올랐다. 수입 과일을 포함한 수입 농산물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거치면서 유통 마진이 높아져 최종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FTA 체결 등으로 국내 소비자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 소비자는 관세 인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소비자시민모임은 설명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측은 “FTA 체결로 관세가 인하되고 수입 물량이 늘어 수입 가격이 내려가면 그 혜택이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돌아가도록 유통구조 혁신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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