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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감은 양심… 위기 불감증 키운다

입력 : 2015-01-19 06:00:00 수정 : 2015-01-22 20: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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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사회] “조직 병폐 말 안한다” 88%… 위기 신호 작동 멈춰
정윤회 문건·땅콩회항… 못본 척하는 세태 화 불러
‘땅콩회항’사건과 ‘정윤회 문건’사건은 관리자의 침묵이 화를 키웠다는 점에서 닮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돌리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지만 회사 내부에서 그의 행위가 잘못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핵심간부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사무장의 잘못’으로 각색하기에 바빴다.

청와대는 지난해 최소 두 차례 이상 문건유출에 대해 외부의 신호를 받았지만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입을 봉하기에 바빴다.

이렇듯 두 조직은 책임자급이 나서서 직위를 걸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호미와 가래를 모두 동원해도 막기 어려운 조직 전체의 위기에 봉착했다. 조직을 위기에 빠트리는 ‘침묵 현상’은 대한항공과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18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3%가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알게 됐을 때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고 답한 비율은 11.7%에 불과했다. 우리 주변이 잘못을 알아도 말하지 않고, 불의를 봐도 눈을 감는 ‘입 닫은 자들의 사회’가 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마지막 경보음조차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침묵현상을 깨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에 따르면 그냥 넘어간 이유에 대해 42.1%는 ‘말을 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25.6%는 ‘내 말 때문에 조직 내 갈등이 생겨서 감정만 상하고 스트레스가 쌓일까봐’라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어 13.8%는 ‘윗사람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9.4%는 ‘튀는 사람 혹은 분란유발자 등으로 인식돼 왕따를 당할까봐’라고 답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체념적 태도와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방어적 태도가 구성원들을 침묵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의견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2.4%가 ‘그렇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23.3%)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조직의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괜히 갈등만 일으킨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은 공공부문의 침묵을 가장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불의나 잘못에 침묵하는 행태가 가장 심각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47.7%가 ‘정치권’을 꼽았다. 이어 정부·공기업(27.9%), 기업(10.6%), 시민사회(9%) 순이었다. 정부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여당과 정부 내에서 대통령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대유 경희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침묵현상은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조직이 집단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막아 구성원들이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이 같은 현상이 공공부문에서 나타나면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국사회에 만연한 침묵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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