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낱말 ‘양반’은 그 역사적 배경을 삭제하고서도 오늘날 독립적으로 쓰인다. 쓰임새도 여럿이다.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을 이르는 말이란다. “동학 큰 일하시는 양반치고 그렇게 자상하신 양반도 없을 것이오”(송기숙, ‘녹두장군’ 중에서)처럼 쓴다. 가장 일반적인 활용이다.
‘우리 집 양반’처럼 자기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도 쓴다. 그런가 하면 ‘여보시오, 젊은 양반. 길 좀 물어봅시다’와 같이 상대편 남자를 대충 부르는 말로도 쓴다. 또 ‘이런 답답한 양반을 봤나!’에서처럼 상대편(대개 남성)을 좀 홀대하는 투로도 쓴다.
‘사정이나 형편이 좋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도 있다. “그때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 양반이죠.” 그럼 ‘고생한 그때’는 ‘상놈’이 되는 걸까? 얼굴 바꿔 쓰이는 말글의 모습, 즉 언어의 변용(變容)은 럭비공 튀듯 종잡을 수 없다.
‘양반전’은 독한 풍자(諷刺)다. 말[언어]로 쏘는 총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조선 후기 사회에 쏘아올린 공이다.
어떤 부자가 가난한 양반에게서 ‘양반의 신분’을 산다. 상인, 즉 상놈 신분인 그는 그날로 양반이 됐다. 원님이 그 두 사람과 세상 사람들을 부른다. ‘계약서’를 쓰게 한다. 계약서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양반(신분)을 반납해야 하는 등의 조건을 낭독한다.
“… 느린 걸음으로 걷는 법이다. 글씨는 깨알처럼 한 줄에 100자씩 써야 한다. 돈을 만지지 말고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아야 하며 밥을 먹을 때도 의관을 정중히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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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은 양반과 상인(常人)의 문제를 해학적으로 그려 세상을 풍자한 대표적인 전통 연희다. 서민의 문학이나 놀이에서 양반은 삿대질의 과녁이 될 숙명을 지니고 있다. 사진은 경북 안동에 전해 내려오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한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
“…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으니 이웃집 소가 있으면 자기 논을 먼저 갈게 한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자기 밭의 김을 먼저 매게 하는데 누구든지 말을 듣지 않으면 코로 잿물을 먹인다. 상투를 붙들어 매고 수염을 자르는 형벌을 가하여도 원망할 수 없다 …”
신선 같은 양반의 신분을 염원했던 이 가짜 양반은 끝내 항복하고야 만다. “이건 맹랑합니다. 저를 도적놈으로 만들 셈입니까, 하며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는 한평생 다시는 ‘양반’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좋다는 뜻 양(良)자 쓰는 양반이 아니다. ‘양반’이 왜 ‘양반’인지는 역시 역사에 답이 있다. 양반(兩班) 즉 양쪽 반의 한쪽은 동반(東班), 다른 쪽은 서반(西班)이다. 조정(朝廷)에서 남쪽 보고 앉은 왕의 동쪽 아래에 문관(文官), 서쪽에 무관(武官)이 줄 이루어 섰다. 문반, 무반이라고도 했다. 이 말이 벼슬한 이의 신분(身分)을 이르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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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복식 모형.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동서반의 상호 대립, 즉 양반 사회의 내부 균열도 문제였지만 양반과 양반이 되지 못한 이들인 상인(常人)의 대립 구도 또한 늘 시끄러웠다. 반상(班常)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옛 역사뿐 아니라 동서고금(東西古今)이 공유한 이슈였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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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의 복식 모형. |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 ‘양반은 안 먹어도 긴 트림’ ‘양반은 죽어도 문자질’ 등의 속담은 위신, 체면 등에 집착하는 양반의 습성을 빈정거리는 것이겠다. 본능으로서의 ‘존재의 속성’을 이르는 영국 속담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Eagle does not catch flies)와는 비슷한 듯 다른 말이다.
꼴불견 양반질이건 ‘있는 이들의 미덕’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건, 오래 세상을 적신 이 이미지의 흔적은 결코 간단치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명예만큼의 의무’를 말하는 서구의 개념이다. 그런 흔적들이 우리 언어에도 여러 의미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말이 품은 역사다. 역사교육은 말글에도 올바른 힘을 준다.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
왕이 글쟁이에게 화낸 사연. 조선 22대 정조(재위 1776∼1800)는 11살 때 ‘아빠’ 사도세자가 쌀 뒤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임금이다. 사극(史劇) 주인공으로 수십번 다시 산다. 그의 또 다른 모습, 학자 군주 즉 ‘공부하는 왕’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작다.
현대 독서인들에게 귀감(龜鑑)으로 떠오르는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기린아였다. 벼슬도 제대로 못한 그가 어떤 인연을 빌미 삼아 청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중국을 다녀와 쓴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내용도 그렇지만, 필치(筆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제대로 글 읽었다 자부하는 정조가 한판 크게 싸움을 걸었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1990년대 HOT나 서태지가 던진 파문과도 흡사했을까? 정감(情感)이라고는 싹 지운 듯한 작가 김훈 문장의 쿨(cool)함이나 조선 팔도 음식 이야기로 전혀 새로운 넋두리를 비벼내는 기자 김화성의 심보가 부르는 의외의 공감대와 견줄 수 있을까? 크고 작고 길고 짧은 차이는 있겠지만, 선풍적(旋風的)이란 공통점이 있다. 핵심은 기존(旣存)을 뒤집는다는 점.
방정맞은 말장난 치우고 순정(純正)한 문장을 되찾아 나라의 기풍에 기여하라는 지엄한 임금의 분부에 박지원은 요즘 말로 ‘깨갱’ 하고 얌전 서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착한 문체’로 쓴 글 중 ‘과농소초’(課農小抄·1798년)는 문체는 비록 원래 ‘제 것’이 아니지만, 농업(개혁)론으로 당당하다. 오늘 봐도 그렇다.
‘양반전’은, ‘열하일기’처럼 세상을 깨웠다. 개콘과 견줘도 아쉬울 것 없는 해학성(諧謔性)에다 당시 세상과 양반, 상인(상놈)의 갈등 등을 그려낸 문학성과 역사성으로도 눈길을 모은다. 이런 줄거리의 속뜻을 짐작한 임금과 그의 사람들이 품었을 ‘걱정’을 알 만하다. 급기야 ‘천재’ 박지원에게 그렇게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전통 탈놀이도 양반전처럼 세상 모습과 반상(班常)의 갈등을 보듬고 있다. 번듯한 체하는 무리들의 민낯을 까발리는 이런 놀이 또는 연희(演戱)는 그 무렵의 스트레스를 풀어 폭발을 예방하는 기능을 했겠다. 또 이는 폭발의 예비 또는 전조(前兆)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이런 세련된 시스템, ‘막가는’ 요즘은 기대하기 어렵다.
왕이 글쟁이에게 화낸 사연. 조선 22대 정조(재위 1776∼1800)는 11살 때 ‘아빠’ 사도세자가 쌀 뒤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임금이다. 사극(史劇) 주인공으로 수십번 다시 산다. 그의 또 다른 모습, 학자 군주 즉 ‘공부하는 왕’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작다.
현대 독서인들에게 귀감(龜鑑)으로 떠오르는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기린아였다. 벼슬도 제대로 못한 그가 어떤 인연을 빌미 삼아 청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중국을 다녀와 쓴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내용도 그렇지만, 필치(筆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제대로 글 읽었다 자부하는 정조가 한판 크게 싸움을 걸었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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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천칭)의 두 저울추(錘) 또는 쌍두마차의 두 안장의 모양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양(兩) 글자의 초기 글자 모습. 이락의 저서 ‘한자정해’ 삽화에서 인용했다. |
방정맞은 말장난 치우고 순정(純正)한 문장을 되찾아 나라의 기풍에 기여하라는 지엄한 임금의 분부에 박지원은 요즘 말로 ‘깨갱’ 하고 얌전 서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착한 문체’로 쓴 글 중 ‘과농소초’(課農小抄·1798년)는 문체는 비록 원래 ‘제 것’이 아니지만, 농업(개혁)론으로 당당하다. 오늘 봐도 그렇다.
‘양반전’은, ‘열하일기’처럼 세상을 깨웠다. 개콘과 견줘도 아쉬울 것 없는 해학성(諧謔性)에다 당시 세상과 양반, 상인(상놈)의 갈등 등을 그려낸 문학성과 역사성으로도 눈길을 모은다. 이런 줄거리의 속뜻을 짐작한 임금과 그의 사람들이 품었을 ‘걱정’을 알 만하다. 급기야 ‘천재’ 박지원에게 그렇게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전통 탈놀이도 양반전처럼 세상 모습과 반상(班常)의 갈등을 보듬고 있다. 번듯한 체하는 무리들의 민낯을 까발리는 이런 놀이 또는 연희(演戱)는 그 무렵의 스트레스를 풀어 폭발을 예방하는 기능을 했겠다. 또 이는 폭발의 예비 또는 전조(前兆)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이런 세련된 시스템, ‘막가는’ 요즘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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