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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투사들 ‘나비’ 되어 날다

입력 : 2015-01-01 21:29:05 수정 : 2015-01-01 21: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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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42〉‘도미니카의 영웅’ 미라발 자매

사마나에서 가까운 살세도에 잠깐 들렀다. 살세도는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리포사(Mariposa)’라고 불리는 세 자매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리포사는 나비라는 의미를 지니며 그녀들에게 붙여진 상징이다. 그래서 나비에 관련된 장식도 많고, 조각품이나 기념품도 많다. 중남미에서는 마리포사가 주로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는데, 도미니카공화국에서만 좋은 의미로 불린다.


세 자매는 독재자에 맞서 싸웠던 영웅이다. 1930년대에 독재자 트루히요는 미국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해 32년간 독재를 했다. 독재자의 최후는 암살로 마무리된다.

독재 시절 트루히요에게 대항해서 용감히 싸웠던 세 자매가 에르마나스 미라발(Hermanas Mirabal)이다. 미라발 자매들이란 뜻이며, 여성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던 그 시절에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던 영웅이다.

처음 사건은 파티에서 트루히요와 미라발 자매 중 첫째가 만나며 시작됐다. 트루히요에게 성추행당한 첫째는 그 자리에서 트루히요의 뺨을 때렸다. 그 후 미라발의 아버지가 잡혀가고 결국은 죽임을 당했고, 미라발 자매는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반독재 투쟁을 시작한다. 결국 그녀들은 독재정권 치하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끝까지 싸웠고 결국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현재는 도미니카공화국의 200페소 화폐에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또한 미라발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잘 살고 있으며, 정치권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그들의 후손들이 대접을 받으며 잘 살 수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독재자에 맞선 자매를 뜻 하는 마리포사 장식.
살세도는 마리포사가 태어난 곳이어서 그런지 나비 벽화가 유난히 자주 눈에 들어온다. 이런 마을은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서 좋다. 도시는 보기에 좋은 곳도 많지만, 마음 아프게 하는 곳도 적지 않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들 생가는 평범했으며, 지금은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부유한 가정이었다고 한다. 세 딸은 공부도 잘했다. 독재자 트루히요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게 됐을 뿐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저항 운동을 시작하고, 그 후 결혼도 했다. 하지만 남편도 잡혀갔다. 첫째와 둘째는 결국은 독재정권에 잡혀가서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독재정권에 맞선 용기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게 바로 마리포사다. 그래서 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은 마리포사를 좋아한다. 

200페소 화폐에 미라발 자매 얼굴이 그려져 있다.
커피 농장을 갖고 있던 사람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카카오 농장을 방문하며 알게 됐던 사람 소개로 잠깐 인사를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사람이 바로 마리포사인 미라발 자매의 손자라고 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운동가의 자손이 잘 사는 이 나라가 부러웠다. 살세도 마을은 정말 작은 마을로 그 안에 교통편도 없다. 걸어서 다녀도 다 둘러볼 수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가장 좋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는 가장 고급한 레스토랑일 것이다.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에는 특별히 식당이 필요 없을 것이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세팅된 테이블 몇 개가 있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하는 사람도 전혀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은 제한되어 있다. 고기와 밥을 선택하고, 사이드 메뉴를 선택하는 정도다. 다행히 음식은 괜찮았다. 새로운 곳에 와서 밥을 먹을 때는 일종의 모험이 시작된다. 걱정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다. 잘하면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자칫하면 억지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음식이 웬만하면 감사하게 밥을 먹는다.

살세도는 중심 도로 하나에 여러 작은 골목이 연결되고, 그 골목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다. 중심 도로 옆에는 벽화로 꾸며진 집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백 년가량을 버텨 온 오래된 집들이다. 어떤 집은 허물어져서 아무것도 없는데, 벽에 집 모양을 그려 넣어서 집처럼 보이게 해 놓기도 했다. 이 벽화를 지우고 다시 칠하면 그 집은 새로운 옷을 입는다. 

가짜로 그려 놓은 집이 재밌다.
살세도에서 다시 산토도밍고로 돌아왔다. 산토도밍고에 오면 내가 맛있게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어 편하다. 믿고 자주 가는 식당에서는 새로운 메뉴도 도전해 보게 된다. 여행에서 한 끼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 그 지역에 오래 머문 후에나 가능해진다. 그만큼 산토도밍고가 편해졌다.

살세도에 다녀온 나에게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온 것은 역시 나비 문양이었다. 미라발 자매에 대해 알고 나니, 나비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자유롭게 날고 있을 미라발 자매를 볼 수 있어 흐뭇했다.

나비 문양만큼이나 많은 문양이 도마뱀이다. 도마뱀은 길거리건 집 안이건 흔하게 다닌다. 작은 도마뱀이 제일 귀여울 때는 발을 들고 있을 때다.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장식품과 벽화에 가장 많은 것이 나비와 도마뱀이다. 나는 평소에 도마뱀 장식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나비도 좋아하게 됐다. 살세도 마을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날아다니고 있는 미라발 자매의 용기가 지금도 도미니카공화국에 남아 있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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