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하나하나가 1년 양식 만들어 엄마는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해서 보내셨다. 대구에서 서울로. 혼자서 그 무거운 걸 들고 우체국까지 가서 부쳤다 하신다. 친정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딸년은 도둑년이라고. 왜 맨날 친정 것을 싸가지고 가냐고 뭐라 뭐라 하셨지만 정작 난 어떤 것도 싸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다. 순전히 엄마 탓이다. 서울에 다 있다고 말했지만 서울 사는 딸에게 굳이 먹을 것을 싸가지고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 또한 엄마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 같아 난 못내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친정에 가면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먹을 것을 싸는 엄마를 묵묵히 바라보아야만 한다. 아버지와 엄마의 엇박자와 같은 장단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리라.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택배회사들은 김장특수를 누리고 있다. 소금절인 배추를 해남에서 각 지역으로 공수하느라, 친정엄마가 멀리 떨어진 딸에게 김장을 보내느라 택배기사는 더욱 바빠졌다. 이맘때만 되면 TV에서도 나눔문화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이 ‘김장하기’와 ‘연탄 나르기’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
유네스코에서 기념하고 싶었던 것은 ‘김치’라는 음식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과정.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씻고 다듬고 썰고 재는 과정. 온 식구들이 다 함께 모여 떠들고 이야기하며 만들어가는 ‘김장김치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간과 시간을 기념하고 싶어한 것이다. 김장을 담그는 ‘과정’은 곧 ‘축제의 과정’이다. ‘사회통합의 과정’이다.
일상에서 울퉁불퉁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며느리 사이인 동서 관계, 며느리와 시누이의 관계가 서로 뒤섞이고 버무려지는 시간이다. 울퉁불퉁하던 권력이 부드럽게 이완되는 시간이다. 1960년대 말 이어령 선생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선생은 한국 사람들은 가족끼리 즐기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백일이니, 돌잔치니 모두 손님잔치다. 정작 가족끼리만 조용히 모여 즐기는 잔치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김장 담그는 날’이야말로 가족들의 잔칫날이 아닐까.
‘나 혼자 산다’라는 TV 프로가 인기를 끌어가고 ‘나 홀로족’이 늘어나고 있다, 슈퍼에서는 바나나 한 개씩, 사과 한 개씩 포장한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뉴스다. 앞으로 ‘싱글족’은 더 늘어날 것이다.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다. 밥 한 술씩 퍼 담아 밥 한 그릇을 만들어내듯 이 겨울 식구들의 일손 하나하나가 1년의 양식을 만든다.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매스미디어를 벗어나 아날로그적으로 만나는 시간. ‘다 같이 만들고 다 같이 먹는’ 식구가 비로소 완성되는 시간, 김장철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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