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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형·전병무 편저/역사공간/2만4000원 |
1910년 이후 조선에서는 헌병과 경찰의 삼엄한 경계 아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봉쇄됐고 이에 대한 저항은 표면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민족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당시 정치범의 숫자다. 1918년 후반부터 3·1운동 전까지 보안법 위반자 87명, ‘소요죄범’ 21명 등 정치범은 118명이었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정치범은 8376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소요죄범 1723명, 출판법 위반자 173명, 황실관계범 4명, 정치범죄처벌령범 222명 등이었다.
저항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일제는 경찰 인원을 늘려가는데 1931년 말을 기준으로 2933개 경찰서에 일본인 1만664명, 조선인 8169명의 경찰관이 근무했다. 강제 합병 당시 569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책은 일제강점기 언론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이여성과 매부인 김세용이 1931년부터 5년간 신문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숫자조선연구 5집’을 지금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숫자조선연구는 사회적 측면뿐 아니라 금융과 산업 등 경제적 측면, 민족차별 등을 수치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피폐한 조선인의 삶, 일제의 수탈 정도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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