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구이디, 우춘타오 지음/박영철 옮김/길/2만8000원 |
1993년 2월 21일, 중국 안후이성 리신현의 루잉촌 파출소에서 딩쭤밍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3명의 치안공동방위대원은 곤봉과 굵직한 멜대 등을 사용하며 20여분간 번갈아 폭행을 가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딩쭤밍은 끝내 숨을 거뒀다. 지방 정부의 간부를 고발한 그는 “죽음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딩쭤밍은 평범한 농민이었지만 자신의 가난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는 점이 달랐다. 루잉촌의 1인당 연평균 수입은 400위안(7만2000원). 1년 내내 허리가 휘게 일해도 극심한 가난을 면하지 못했다. 수확한 양곡은 먹을 것을 제하면 전부 촌(村)정부에서 ‘제류금’(촌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징수하는 돈)으로 가져가 버렸다. 촌정부의 관리들은 뇌물을 받았고,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품을 착복했다. 관리들의 자식까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딩쭤밍은 문제를 제기했다. 고발에 앙심을 품은 관리는 괜한 시비를 걸었고 그것이 문제가 돼 딩쭤밍은 “지도간부들의 ‘어용도구’일 뿐인” 파출소에 끌려갔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농민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방정부는 일련의 사건을 숨기려 했으나 언론을 통해 중앙정부에 알려졌다. 사태 파악을 지시한 중앙정부에 지방정부의 관리는 “좋은 것은 보고하고 나쁜 것은 보고하지 않는” 가장 익숙한 짓을 벌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중앙정부가 직접 진상조사에 나섰고, 농민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 딩쭤밍을 죽인 공권력의 문제 등은 파헤쳐졌다. 관련자들은 처벌되고 딩쭤밍의 가족은 정부의 사과를 받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실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의 농촌 모습. 무너질 듯한 집과 앙상한 노인의 몸이 중국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중국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농촌은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야 했고, 지방 정부의 무능과 부패까지 겹치며 심각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번역을 맡은 군산대 박영철 교수는 “중국 공산당 당국은 독재체제의 관성에 젖어 시민과 논의하고 타협하는 방법과 기술을 익힐 줄 모르는 것 같다”며 “포용적인 정치제도를 향한 근본적인 정치변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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