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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장면. 을미사변 120주기인 2015년이 다가오면서 명성황후의 비극을 재조명하고 추모하려는 움직임이 문화계 안팎에서 활발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무참(無慘)하게도 당시 우리나라를 쥐락펴락한 존재는 ‘일본’이라고도 하는 왜였다. 왜의 미우라 공사가 주동이 되어 처참한 살육(殺戮)을 벌였다. 자기들끼리는 ‘여우사냥’이라고 했다던가. 대단한 정치력으로 저들의 야욕에 훼방꾼이 된 우리의 왕비(王妃)를 죽였다. 고종이 황제(皇帝)를 칭했으니 황후(皇后)다. 그 죽이고 죽임당한 것을 보통 시해라고 한다.
이 무렵이면 10·26을 떠올리게 된다. 철석같이 믿고 써 먹던 부하의 총에 대통령이 살해된 사건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라고 한다. 1979년 10월26일 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유신 체제가 몰락했고, 18년 박정희 권좌(權座)는 무너졌다.
시해(弑害)는 뭔데 이런 특별한 상황을 표현하는 제목이 되는가. 어떤 살해가 시해인가. 예로 든 두 사례의 어법(語法)을 보니 시해는 윗사람을 (아랫사람이) 죽인 상황을 이르는 개념이다. 큰 범위인 ‘살해’ 중의 한 부분인 것이다.
대부분이 경우 말의 뜻을 새기는 사전(辭典)은 이런 활용법의 이유를 보듬고 있다. 두드리면 보여준다. 혹 고사(故事)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말이나 전문 분야의 어휘는 사전(事典)과 상의할 일이다. 국어사전, 한자사전, 영어사전 등은 말 사(辭)자 辭典이고, 백과사전과 같은 특별한 사전은 일 사(事)자 事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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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구니토모 히게아키의 후손이 을미사변 110주기였던 2005년 경기 여주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 황후의 초상화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殺의 원형 杀자의 어원(語源)인 갑골문은 날카로운 무기가 머리에 꽂힌 채 꼬리를 늘어뜨리고 죽어 있는 다리 4개의 들짐승 그림이다. 나중에 몽둥이 든 손의 (그림)글자 殳[수]가 붙었다. (정대현 편저 ‘다산 천자문’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인간이 죽여야 하는 들짐승을 그린 그림으로 ‘문자의 새벽’을 살던 사람들은 ‘죽이다’란 뜻을 표현했다. 은유법의 제대로 된 본보기다. 그림을 뜻으로 전환하여 기억하고 생각하고 기호화(디자인)하는 과정은 문자화(文字化)이기도 하겠지만, ‘인류의 자랑’인 문화(文化)의 첫 발자국이기도 할 터이다.
‘윗사람을 죽이다’라는 뜻을 혹 영어에서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암살(暗殺)하다’라는 뜻의 assassinate[어새시네이트]라는 말이 좀 특별한 죽임을 뜻하지만 거의 ‘죽이다’, ‘살해하다’라는 단순한 뜻의 kill[킬]이나 murder[머더]다. 전쟁터에서 죽이는 것은 slay[슬레이]다. 영어에는 ‘죽임’에 계급이 없는 것이다.
비유적 표현들은 영화 제목으로 쓰일 정도로 재미있다. 끝장내다는 말 terminate[터미네이트]는 ‘터미널에 이르다’라고 생각하면 쉽게 ‘죽이다’의 뜻이 연상된다. 청산(淸算)하다, 셈을 마치다는 뜻 liquidate[리퀴데이트]나 제거하다는 eliminate[엘리미네이트]도 ‘죽인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손도끼를 든 남자 hatchet man[해치트 맨]은 ‘살인청부업자’의 뜻이다.
살(殺)의 杀자를 분해해서 ‘풀과 나무를 베는 것에서 殺이란 글자가 비롯됐다’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다. 풀 베는 일을 이르는 예초(刈草)의 刈자와 나무 목(木)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다. 한자의 역사가 갑골문의 출현으로부터 무려 3500여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글자의 발생과 전승, 변화에 갈래나 주름이 적지 않을 것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윗사람인 부모나 임금[군(君)]을 죽이는 것을 시해(弑害)라고 썼다. 시살(弑殺)도 같은 뜻이다. ‘거꾸로’ ‘반역(叛逆)’의 뜻을 가미한 시역(弑逆)이란 말도 있다. 특히 임금을 죽였을 때는 시군(弑君)이다. 역사를 구성하는 여러 낱말에는 이렇게 속뜻이 담겨 있다.
강상헌 평론가·우리글진흥원장 kangshbada@naver.com
■사족(蛇足)
일국의 왕비를 찌르고 불태워 죽인, 그 시해사건 이후의 역사 또한 궁금하다. 더 비참한 지경으로 이야기는 굴러간다. 역사의 한 기록(한국학중앙연구원)을 인용한다.
“영·미·러 각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자국 외교관들의 행동을 자제토록 지시하였다.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하 일본 정부 및 각국 주재 외교관의 다양한 사태 무마책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조선의 서양 외교관들은 이 사건에 미우라가 직접 관계되어 있다는 것까지는 밝혔으나 더 이상의 배후는 추구하지 못하였다.
상해에서 발간된 ‘북화첩보’(北華捷報)는 조선과 일본주재 통신원의 다양한 보고를 토대로 ‘사건의 주모자는 미우라의 전임자인 이노우에’라고 보도하였다. 사건의 지휘 계통은 ‘이등박문 내각(배후) 〉 이노우에(중개역) 〉 미우라(하수역)’였다는 뜻이다. 얼마 뒤 일본 정부는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증거 불충분’이라 하여 전원 무죄 방면하였다. 그들은 감옥에서조차 영웅 대우를 받았고, 미우라가 석방되어 동경에 도착하자 일본 국왕은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까지 하였다.”
을미사변은 항일(抗日) 의병의 봉기를 불렀다. 일본군 밀정을 살해한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안중근 장군이 이등박문을 사살(1909년)한 이유가 됐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끝내 나라를 잃고 만다.
일국의 왕비를 찌르고 불태워 죽인, 그 시해사건 이후의 역사 또한 궁금하다. 더 비참한 지경으로 이야기는 굴러간다. 역사의 한 기록(한국학중앙연구원)을 인용한다.
“영·미·러 각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자국 외교관들의 행동을 자제토록 지시하였다.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하 일본 정부 및 각국 주재 외교관의 다양한 사태 무마책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조선의 서양 외교관들은 이 사건에 미우라가 직접 관계되어 있다는 것까지는 밝혔으나 더 이상의 배후는 추구하지 못하였다.
상해에서 발간된 ‘북화첩보’(北華捷報)는 조선과 일본주재 통신원의 다양한 보고를 토대로 ‘사건의 주모자는 미우라의 전임자인 이노우에’라고 보도하였다. 사건의 지휘 계통은 ‘이등박문 내각(배후) 〉 이노우에(중개역) 〉 미우라(하수역)’였다는 뜻이다. 얼마 뒤 일본 정부는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증거 불충분’이라 하여 전원 무죄 방면하였다. 그들은 감옥에서조차 영웅 대우를 받았고, 미우라가 석방되어 동경에 도착하자 일본 국왕은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까지 하였다.”
을미사변은 항일(抗日) 의병의 봉기를 불렀다. 일본군 밀정을 살해한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안중근 장군이 이등박문을 사살(1909년)한 이유가 됐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끝내 나라를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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