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악스코리아에서는 일본의 테크노팝 그룹 퍼퓸(카시노 유카, 니시와키 아야카, 오오모토 아야노)과 누 메탈 밴드 맥시멈 더 호르몬(카와키타 료, 카와키타 나오, 츠다 다이스케, 우에하라 후토시)의 합동 콘서트 ‘Perfume FES!! 2014’의 피날레 공연이 펼쳐졌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이날 공연은 당초 올해 4월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취소된 공연이다.
하지만 퍼퓸의 멤버들은 한국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의견을 모아 ‘Perfume FES!! 2014’의 피날레 장소를 서울로 결정해 국내 팬들도 이 ‘희대의 합동 공연’을 눈앞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퍼퓸과 맥시멈 더 호르몬의 합동 콘서트는 분명 참신하고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조합이긴 하지만 상당한 의문부호와 걱정도 뒤따르는 공연이었다.
여성 3인조 테크노 팝그룹 퍼퓸과 누메탈 밴드 맥시멈 더 호르몬은 그 음악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오렌지캬라멜이 노브레인, 바세린, 닥터코어911 등을 합친 듯한 밴드를 불러 함께 콘서트를 하는 느낌으로, 그 음악만큼이나 전혀 다른 팬층을 지닌 두 그룹이 과연 현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적절한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이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맥시멈 더 호르몬이 등장하자 스탠딩석의 관객들은 모두 손을 들어 이들을 환호했고, 노래가 시작되자 곧 끊임없이 슬램을 이어가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최근 국내 공연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모싱존(손과 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곳)과 바디서핑을 시도하는 관객까지 등장해 공연장의 열기를 더했다.
이를 맞이하는 맥시멈 더 호르몬의 무대도 무척 흥미로웠다. 국내에서 J-ROCK을 듣는 팬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펑크(Punk), 훵크(Funk), 메탈, 랩, 로큰롤 등 락장르 중에서도 특히나 자극적이고 강렬한 장르는 모조리 섞어놓은 듯한 이들은 음악은 듣고만 있어도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엉망진창이지만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이들의 무대매너는 공연 내내 관객들에게 잠시도 가만히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곧이어 이어진 퍼퓸의 무대도 놀라웠다. 분명 방금 전까지 몸싸움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슬램을 즐기던 팬들은 퍼퓸이 올라오자 어느새 이들의 조련을 순순히 따르는 순한 양으로 변신했다.
퍼퓸 멤버들의 구호를 따라하고 이들의 신호에 맞춰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모습은 여느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찾은 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맥시멈 더 호르몬에서부터 이어진 열기만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맥시멈 더 호르몬의 무대가 온갖 자극적인 소스를 듬뿍 버무린 짬뽕 같은 맛(나쁘다는 뜻이 아니다)이었다면 퍼퓸은 살짝 얼린 초콜릿처럼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무대가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테크노 그룹답게 정교하게 이어지는 안무와 일본 아이돌 그룹 특유의 귀여운 리액션 등이 더해져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콜라보레이션 콘서트답게 앙코르무대는 퍼퓸과 맥시멈 더 호르몬이 함께 올랐다. 맥시멈 더 호르몬의 홍일점이자 드러머인 카와키타 나오가 퍼퓸의 네 번째 멤버로 합류해 안무와 노래를 소화한 것.
여성임에도 누메탈 밴드의 드러머로 터프한 이미지를 지닌 카와키타 나오였지만 이날만큼은 걸그룹 멤버로서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고, 상당한 연습을 한 듯 퍼퓸의 ‘레이저빔’과 ‘초콜릿 디스코’를 위화감 없이 소화해 큰 환호를 받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날 공연은 달라도 너무 다른 정반대의 음악을 지향하는 두 그룹의 합동공연으로, 이 같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이 성사됐다는 것 자체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탄생하고 인기를 얻는 일본 음악계의 탄탄한 저변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인구수 1억2천만 명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시장을 지닌 일본과 인구수 5천만 명의 우리나라를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이날의 ‘Perfume FES!! 2014’는 다양한 음악씬의 활성화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재미를 확실히 알려준 콘서트였다.
최현정 기자 gagnrad@segye.com
사진제공=아뮤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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