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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 날', '이괄의 난' 집중 분석 조명

입력 : 2014-10-04 18:19:33 수정 : 2014-10-04 18: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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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공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이 반역자로 돌변한 과정을 '역사저널 그날'이 분석한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인조 정권을 향해 반란의 칼을 꺼내든 '이괄의 난'을 분석하고, 조명한다.

이괄은 반정 공신 중 11번째에 이름을 올렸고 인조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던 무신이다. 하지만 공신책봉 약 3개월 뒤 이괄은 1만2000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했다.그는 왜 반정에 성공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반을 꾀했다.

이괄은 1623년 3월 13일 반정이 일어난 날 반정군 대장 김류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군사들은 혼란에 빠지고 거사가 중단될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이괄은 반정군의 임시대장으로 추대돼 전열을 정비했다.

하지만 뒤늦게 김류가 나타나고, 이괄은 다시 대장 자리를 넘긴다. 게다가 반정 성공 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평안도 북병사로 발령을 받게 된다. 결국 공신 책봉에서 2등으로 밀려난셈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반정 직후 조선의 정치 상황을 조명한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정권을 돌보기보다 광해군 세력들을 숙청하기에 바빴다. 인조가 왕이 된 후 1년 사이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면서 민심도 흉흉해졌다.

여기에 국제 정세도 후금과 명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상황이어서 그 불똥이 언제 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북방을 지켜야할 무장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 이괄의 기세에 놀라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피난을 떠났다.

이괄의 날은 조선 역사상 반란에 의해 왕이 도성을 떠난 유일한 사건으로 이괄은 선조의 서자인 흥안군을 옹립하고 한양에 무혈 입성했다. 조선 하늘 아래 두 명의 임금이 존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괄의 반란군은 영변에서 한양까지 약 20일 만에 파죽지세로 내려왔다. 이괄의 부대가 관군을 모두 격파한 원동력은 바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왜군 병사였던 항왜에 있었다. '역사저널 그날'은 항왜의 당시 전투력을 집중 분석한다.

조선의 운명을 위협했던 '이괄의 난' 속 비하인드 스토리는 4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e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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