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다. 태는 태반(胎盤) 즉 탄생을 앞둔 아기가 사는 엄마 배 속의 집이다. 환골탈태는, 마치 혁명(革命)처럼 ‘모든 것을 바탕부터 뒤집어 바꾸는 것’이란 뜻으로 대부분 생각한다. 쓰임새도 거의 다 그런 강렬한 의미를 담는다. ‘노라조’라는 남성 듀오의 음반 중에 ‘환골탈태’라는 제목이 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파격적인 변화”라고 그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자주 쓰지는 않는 한자들의 조합(組合)임에도 그들의 말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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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그림. 중국화가 백석(白石) 제황(齊璜·치후앙)의 1949년작 ‘쌍서포도도(雙鼠葡萄圖)’. 윤곽선(輪郭線)을 뼈[골(骨)]라고 한 것은 시(詩)를 지을 때의 환골(換骨)의 의미와 같다. 전남 목포 남농기념관 소장 |
두 번째 뜻은 ‘사람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하여 전혀 딴사람처럼 됨’이다. 약간 뜻밖이다. 두 번째가 글머리에서 언급한 생각과 흡사하나 어감(語感) 즉 뉘앙스는 크게 다르다.
사자(四字)성어라고 흔히 말하는 대부분의 익은말[숙어(熟語)]은 대개 속뜻이나 역사 또는 야사(野史)의 이야기를 깔고 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의(literal·리터럴) 뜻과는 다소 다른 뜻을 품기 마련이다.
크도록[장(長)] 도와준다[조(助)]는 두 글자의 합체인 ‘조장’이 의외로 부정적인 뜻을 보듬고 있어 그 활용에 주의해야 함과도 같다. 배경음악(BGM)과도 같은 그 바탕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정확(正確)히 알고 적확(的確)하게 쓸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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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듀오 노라조는 2010년 ‘환골탈태’라는 이색적인 앨범을 내며 “파격적인 변화라는 뜻으로 그 제목을 썼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황정견 왈(曰). “시의 뜻이 끝이 없지만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그 재주로 무궁한 뜻을 추구하자면 도연명이나 두보라 해도 (시의) 그 교묘함에 잘 이르지 못할 것이다. 뜻을 바꾸지 않고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환골’, 그 뜻으로 형용하는 것을 ‘탈태’라고 한다.”
옛 사람 시(글)의 말을 바꿔 내 뜻을 표현하는 것이 환골, 전체적인 분위기나 감성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탈태란다. 말의 뜻은 그러하나 환골과 탈태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새기는 이들에 따라 얘기가 다르다. 구분이 필요 없는 말인 듯도 하다.
그보다 먼저 환골은 도가(道家)에서 신비스러운 약(藥)인 영단(靈丹)을 먹어 뼈를 선골(仙骨) 즉 신선의 뼈로 바꾸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도가는 중국사상의 새벽인 선진(先秦)시대 노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학파로 공자의 유가(儒家)와 함께 큰 줄기를 이뤘다.
시 짓는 방법을 논하는 데 쓰인 이 골(骨)과 태(胎)가 ‘비유법의 소도구’임을 알 수 있다. 동양화 용어인 몰골법(沒骨法)을 떠올리면 ‘환골’의 의미를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겠다.
글자의 뜻은 뼈가 물에 잠긴다[沒]는 뜻인데, 윤곽을 나타내는 선이 없이 대상을 그려내는 기법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개념은 구륵법(鉤勒法)으로 물체의 윤곽을 그리고 그 안을 물감으로 채색하는 기법이다. 동물 몸 안의 뼈의 단단한 물성(物性)과는 달리, 윤곽선 또는 시(詩)를 이루는 구성 요소로서의 어휘를 뼈라고 표현(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환골탈퇴’라고 쓰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자 없이 학업을 쌓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이 말을 환골탈태의 뜻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인 글쓰기 마당인 여러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만든 기사의 언어 무더기에서도 흔하다. ‘탈퇴(脫退)하다’라는 단어와 환골탈태의 뒷부분을 혼동한 결과일까?
최근에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직원 워크숍에서 ‘환골탈퇴’를 주문하는 훈시(訓示)를 했다”라는 기사가 국가정책 홍보매체에 버젓이 올라 구설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해당 부처가 보도자료에 그렇게 적어 퍼뜨린 탓인지 모르겠으나, 여러 신문과 방송 기사도 ‘환골탈퇴’라는 틀린 표현이 또렷하다. 내용도 거지반 같고 오자(誤字)까지 빼다 박은 그 기사들의 필자(기자) 이름은 다 달랐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
손[수(手)]의 여러 동양식 디자인은 많은 한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手)는 扌[수]자로 모양을 바꿔 다른 글자를 만드는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글자들은 손이나 손으로 하는 동작의 뜻을 품고 있다.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환(換)은 바꾼다는 뜻, 손으로 하는 동작임을 알 수 있다. 탈(奪)의 아래에 붙은 마디 촌(寸)은 손에 점을 붙여 길이를 표현하고자 한 글자로 역시 (손으로) 빼앗는다는 뜻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또’(again)라는 뜻으로 쓰이는 우(又)는 원래 손을 그린 그림이다. ‘친다’(strike)는 뜻의 복(攴, 攵)자는 又에 매(막대기)를 얹은 모양이다. 아버지 부(父)자도 攴자처럼 손과 막대기의 합체다. (힘으로) 식구를 지키는 모습의 반영이었을까? 힘 력(力)자는 농기구인 쟁기의 모습이라고 하나 손의 모양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손톱 조(爪)는 다툴 쟁(爭), 사랑 애(愛), 할 위(爲) 등의 모양으로 손으로 하는 여러 동작의 단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떠받든다는 뜻의 공(廾)은 두 손으로 뭔가를 들어 상대방에게 공손히 드리는 모양이다.
이런 새김은 문화의 새벽에 동북아시아를 흐르는 황하(黃河)의 양지쪽 구릉에서 시작된 갑골문(甲骨文)이 가르쳐주는 인류 의식(意識)의 원형(archetype 또는 prototype)이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점복(占卜), 기원(祈願)을 담은 무격(巫覡) 즉 샤머니즘 등이 그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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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갑골문. 손가락 다섯 개를 그린 이 ‘그림’은 3000년의 기호화(記號化) 과정 끝에 지금 글자가 됐다. 수(手)자에서 이 두 그림을 읽어내는 것 같은 재미난 지적(知的) 탐험이 문자학이다. 이락의 저서 ‘한자정해’ 삽화에서 인용했다. |
수(手)는 扌[수]자로 모양을 바꿔 다른 글자를 만드는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글자들은 손이나 손으로 하는 동작의 뜻을 품고 있다.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환(換)은 바꾼다는 뜻, 손으로 하는 동작임을 알 수 있다. 탈(奪)의 아래에 붙은 마디 촌(寸)은 손에 점을 붙여 길이를 표현하고자 한 글자로 역시 (손으로) 빼앗는다는 뜻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또’(again)라는 뜻으로 쓰이는 우(又)는 원래 손을 그린 그림이다. ‘친다’(strike)는 뜻의 복(攴, 攵)자는 又에 매(막대기)를 얹은 모양이다. 아버지 부(父)자도 攴자처럼 손과 막대기의 합체다. (힘으로) 식구를 지키는 모습의 반영이었을까? 힘 력(力)자는 농기구인 쟁기의 모습이라고 하나 손의 모양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손톱 조(爪)는 다툴 쟁(爭), 사랑 애(愛), 할 위(爲) 등의 모양으로 손으로 하는 여러 동작의 단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떠받든다는 뜻의 공(廾)은 두 손으로 뭔가를 들어 상대방에게 공손히 드리는 모양이다.
이런 새김은 문화의 새벽에 동북아시아를 흐르는 황하(黃河)의 양지쪽 구릉에서 시작된 갑골문(甲骨文)이 가르쳐주는 인류 의식(意識)의 원형(archetype 또는 prototype)이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점복(占卜), 기원(祈願)을 담은 무격(巫覡) 즉 샤머니즘 등이 그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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