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17개 부처에서 27건의 예산 집행 위반 사례가 발견됐다. 국가재정법은 ‘각 중앙관서의 장은 세출예산이 정한 목적 외에 경비를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에도 46건의 위반 사례를 찾아내 시정조치를 요구했었다. 조남희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국가재정법은 예산의 목적 외 사용금지 원칙만 규정하고,위반사항에 대한 제재조항은 없다”며 “해당 사업 예산을 일정 비율로 감액하는 등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 내용 바꾸고, 용도 안 맞는 데 쓰고
유형별로는 사업의 지원방식이나 지원대상 등 주요 내용을 임의로 바꾼 것이 9건(33%)으로 가장 많았다. 비목의 용도에 부합하지 않는 집행도 6건(22%)이었다. 예산의 이·전용 관련 규정을 위반한 사업은 5건(19%),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을 추진한 것도 4건(15%)이나 됐다. 이 밖에 정보화 예산의 낙찰차액을 목적과 다른 곳에 집행한 것이 2건(7%), 연구개발비를 목적과 다르게 집행한 것이 1건(4%)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연안정비사업(예산 473억1200만원) 중 부산시 다대포해수욕장 시설비의 24억2700만원을 포항시 송도해수욕장 시설비로 조정했다. 그러나 포항시 송도해수욕장은 집행액이 6억2700만원에 불과해 애초 예산으로 배정받은 15억원도 집행하지 못했다. ‘자의적’ 예산집행인 셈이다. 소방방재청은 고위험군 소방공무원의 전문검사 및 진료 예산 8억4800만원을 편성했으나 심리치료비 신청 및 집행 실적이 부진하자 사업 내용을 변경해 심신건강캠프 운영 예산으로 사용했다.
용도에 맞지 않는 사업에 예산을 집행한 일도 적지 않았다. 외교부는 영토주권 수호 및 국제법을 통한 국익 증진 사업의 일반수용비로 다국어 독도 홈페이지 제작을 수행했다. 이 사업은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외국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국어로 구성된 독도 홈페이지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 등 7개국어 홈페이지를 추가하는 사업이다. 전산용역에 해당하므로 연구개발비로 편성·집행돼야 한다. 안전행정부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운영의 일반수용비로 갈등극복·국민통합 우수사례 원고료 1030만원, 정책연구협의회 과업수행 사례비 3000만원, 지역갈등에 대한 국민의식 여론조사비 1358만원, 소셜빅데이터 기반 대국민 소통 및 갈등 분석비 199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는 2013년도 예산안 작성 세부지침에 연구개발비 적용 대상으로 돼 있는 사업이다.
◆타 사업 예산 쓰고, 계획 없는 사업 벌이고
예산의 이용(移用)·전용(轉用) 제도는 예산의 목적 외 사용 금지에 대한 예외적 제도로 허용 범위와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선거 관리사업 예산 중 일반수용비 7000만원을 전용절차 없이 타 단위사업인 한국선거제도 해외전파의 ‘외국 선거관계자 연수 TV 다큐멘터리 제작·방송’ 비용으로 집행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청사의 세종시 이전에 따른 이주 및 이사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편성한 청사이전지원사업의 국내여비 중 1900만원을 기타직 보수로 전용하고 이 중 1400만원을 집행했다. 2012회계연도 결산 분석 때는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세종청사 이전에 따른 직원 이사비를 국제금융외교 강화 사업에서 전용해 집행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을 벌인 경우도 있었다. 법무부는 성폭력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및 약물치료 사업의 공공요금을 전용해 성폭력범죄자 등록시스템 고도화 사업 관련 데이터베이스(DB) 저장매체 구입 등의 명목으로 7억1600만원을 집행했다. 대법원은 재판사무·사법행정시스템 고도화 예산으로 애초 계획에 없던 신규사업(대법원 방문행사 시스템 구축)을 추진했다. 이처럼 사업 내역 변경이나 예산 이·전용을 통해 애초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재정 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 소지가 많다. 해당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기회가 없었고, 사업 준비가 부족해 집행이 부진하거나 예산 낭비로 이어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정부조직 진단·관리 사업의 연구개발비로 사업 목적과 관련없는 공공데이터 개발 관련 연구용역 등을 추진하기 위해 1억3500만원을 집행했다. 헌법재판소는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점검 예산의 낙찰 차액 2100만원으로 세계헌법재판 홍보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예산의 목적 외 사용 금지 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지침이나 예규형식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며 “전용 요건 및 한계 명확화, 일정 기준 이상 이용의 국회 승인, 결산심사 결과 예산 반영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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