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복더위에도 밤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우고 자야 해요. 안 그러면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아요. 열대야가 없는 이곳이 진정 여름휴가지 아니겠어요. (호호호)”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일대 산속의 아담한 집.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자주 다니려고 장만한 15평짜리 주택을 올여름 휴가지로 정했다.
태풍 열기까지 겹쳐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7월 마지막 주에는 낮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으면서 차가운 지하수를 온몸에 연신 들이붓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집주변에 장대처럼 무성하게 자란 풀은 한숨부터 짓게 한다.
풀이 우거진 곳은 괭이로 메다가, 밭까지 쳐내려 온 칡덩굴은 낫으로 베어내고 고추밭 고랑은 호미로 엎드려 잡풀을 메는 동안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실컷 일하고 얼음물 같은 지하수로 샤워를 하고 나면 도시에서 절대 느껴볼 수 없는, 말할 수도 없는 쾌감을 맛본다.
해가 기우는 저녁 무렵이면 여지없이 선선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특히 불빛에 이름 모를 벌레들이 모여들어 저녁식사는 해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호박잎과 깻잎을 찌고 가지는 볶고 엄나무와 오갈피나무를 넣어 한 솥 가득 삶은 토종닭으로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끝낸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장작을 연신 들이밀면서 혹여 구들장이 너무 뜨겁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아궁이 입구에 던져 놓은 감자는 장작불이 꺼진 뒤 알맞게 익어 호호 불면서 껍질을 벗겨 먹으며 깊은 산속 시골밤을 맞이한다.
툇마루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여동생은 추워서 안되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제일 좋은 자리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밤이 깊을수록 강원도 골짜기는 차가운 기운이 몰려와 불 지핀 구들방이 최고다.동이 트자마자 마을 이장님이 가져다 주신 옥수수와 감자를 한 솥 삶아 막걸리 한 잔씩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이장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한다는 소식 이후 새와 멧돼지 등의 수렵면허를 가진 총포 소지자들이 일시적으로 경찰서에 엽총을 반납을 했다고 귀띔한다.
덕분에 이곳에서 다양한 새를 볼 수 있었지만 이장님은 종일 새를 쫓으려 깡통소리를 내느라 바빴다. 새들이 여물어가는 과일을 쪼아먹는 통에 수확에 문제가 있다며 걱정하는 눈치다. 이렇게 며칠을 산속에서 더위를 피해 즐겁게 지내고 나니 또 여름휴가가 그리워진다.
송현숙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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