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낮잠을 깨우지 않은 유비 현재 나이가 50, 60대면 대부분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를 읽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시카와 에이지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등과 함께 내가 기억하는 일본 사람이 됐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이 구입한 요시카와의 ‘삼국지’는 총 5권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책들이 꽤 두꺼웠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무협지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 책이 두꺼워서 엄두가 안 났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리 초등학생들이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첫 부분을 읽자마자 주인공이 유비라고 믿게 됐다. 유비가 홍부용이라는 아름다운 처자와 결혼하는 대목에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예외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마침내 책을 다 읽고 나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유비가 삼국통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공이 먼저 죽는 무협지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로소 ‘삼국지’는 통속적인 무협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옛날 추억도 되살릴 겸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다시 읽어보려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책이 10권이나 왔다. 물론 옛날 5권짜리 책보다 두께가 얇았지만 어쨌든 10권의 책을 읽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니 천문을 꿰뚫어본 제갈량이야말로 ‘삼국지’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제갈량이 처음으로 천문을 이용하는 장면은 남동풍을 불렀을 때다. 그는 남병산에 칠성단을 만들고 우매한 오나라 군사들을 현혹시켰다. 아마 동양 별자리 28수가 그려진 깃발 28개를 칠성단 주위에 배치하고 ‘세리머니’를 했을 것이다.
적벽대전이 끝나갈 무렵 관우를 화용도로 보내면서 제갈량은 유비에게 ‘제가 천문을 보고 인명을 살피건대… 조조 개인의 수명은 여기서 절명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같이 말한다. 그리하여 관우가 ‘오관돌파’할 때 조조에게 입은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준다. 관우가 마음이 약해 조조의 목을 거두지 못할 것까지 예상하고 내린 결정이다.
제갈량은 자기의 라이벌(?)이었던 방통의 죽음도 별을 보고 알아차린다. 알다시피 유비가 사마휘 수경 선생을 만났을 때 ‘와룡과 봉추 중 하나만 옆에 있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같은 말을 듣는데 여기서 와룡은 제갈량이요 봉추는 방통이었다. 방통은 주군인 유비와 함께 촉 정벌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갈량이 천문을 이용한 것은 자기 수명을 연장하려고 제를 지낸 것이다. 제갈량의 이런 시도는 위연이라는 장군이 제기를 걷어차며 물거품이 된다. 위연은 나중에 촉을 배신해 죽게 된다. 어쨌든, 이러니 누가 제갈량을 이길 수 있으랴. 제갈량은 죽어서도 산 사마의 중달을 쫓았던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자기 신하로 만든 과정을 ‘삼고초려’라고 한다. 여기서 감동적인 삼고초려 장면을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에서 살펴보자. ‘공명편’을 보면 첫 번째 방문에서 유비는 눈보라 속에 제갈량을 찾아가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온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제갈량 대신 아우 제갈균을 만난다. 형의 행선지를 묻는 유비의 질문에 제갈균이 답한다.
“어떤 날은 강이나 호수에 배를 띄워 놀고, 어떤 밤은 산사에 올라 승문을 두드리며, 또는 벽촌의 친구 등을 방문해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고 시나 그림에 흥미를 느끼는 등 통 왕래를 추측하기 어려운 형이기 때문에… 오늘도 어디 가셨는지 모르겠군요.”
이렇게 재미있는 삶을 누리던 제갈량이었으니 세상에 나오기 싫었을 법도 하다. 마침내 해가 바뀌자 유비는 입춘 제사를 마치고 점술가에게 길일을 받아 세 번째 방문에 나선다. 이때 유비는 47세, 제갈량은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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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
성질 급한 장비가 아무리 성화를 부려도 유비는 제갈량을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잠에서 깬 제갈량이 처음에 난색을 표하자 유비는 “선생이 일어서지 않는다면 결국 한의 천하는 아주 끊어집니다” 말하며 울기까지 했다. 유비의 지극한 정성은 결국 제갈량의 출려를 얻어낸다.
이렇게 만난 유비와 제갈량 사이의 의리는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유비는 임종 때 “내 아들이 모자라면 당신이 임금이 돼 촉을 다스리라” 유언한다. 어떻게 왕조에서 이게 가능한가? 얼마나 주군이 신하를 신뢰하면 그렇게 유언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신하’를 이 정도 신뢰하는 ‘주군’이 있을까?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도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다. 그리하여 제갈량은 유선에게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출사표’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주군’에게 이 정도 충성하는 ‘신하’는 있을까? 이런 것은 옛날 얘기일 뿐이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연봉만큼만 일하면 되는 것인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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