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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마구잡이 구조조정 손 놓은 정부

입력 : 2014-08-03 19:25:00 수정 : 2014-08-03 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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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규모 고용 변동 신고 법제화 유명무실
20여년 전 희망퇴직·명예퇴직 등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견제할 법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정부가 수수방관해 기업들이 편의대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개월 이내에 근로자 10% 이상의 대량 고용변동이 있을 경우 정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 고용정책기본법 제33조 규정이 1993년 법 시행 이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대량 고용변동에는 최근 유행하는 희망퇴직을 비롯해 명예퇴직과 조기퇴직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여년간 기업들은 대규모 명퇴 등을 실시하면서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로 신고할 경우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지만 과태료가 부과된 적도 없었다.

한 의원이 문제를 지적하자 고용부는 최근 8320명의 직원을 특별명예퇴직이라는 형태로 구조조정한 KT에 처음으로 법 규정에 맞춰 신고하도록 했다.

고용정책기본법에는 정부가 대량 고용변동 신고를 받으면 실업자의 재취업 촉진 등 고용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대량 고용변동 가운데 ‘정리해고’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신고의무가 별도로 부여돼 있다. 하지만 고용부의 최근 5년간 경영상 해고(정리해고) 신고서 접수 현황을 보면 신고 인원이 점차 줄고 있다. 2010년 4628명에서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929명만 신고됐다. 기업들이 요건이 엄격한 정리해고 대신 신고 의무조차 없는 줄 알았던 희망퇴직 등을 선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 7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8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만명(12.7%)이나 증가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을 상실한 사람 중 경영상 필요에 의하거나 기타 회사 사정에 의한 퇴직자 수가 지난해 87만8343명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이런 제도가 운영되는지 잘 몰랐고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간 정부의 지원 틀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는데 현재 금융권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기업들이 편법으로 대량 고용조정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법적 의무마저 이행하고 있지 않은 정부가 고용을 최우선 과제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는 고용유지가 신규 창출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윤지희 기자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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