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화 고작 30년… 한국엔 대부분 미국식

벨기에 제과점 ‘메종 당두아’는 세계 최고의 와플을 만든다고 자부한다. 허풍 섞인 선전 문구가 아니다. “먼저 자랑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손님들이 세계 최고라 평가했다”고 한다. 이들의 맛에 반해 일본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2012년에는 일본에 지점까지 생겼다. 이곳은 1829년에 설립돼 역사가 185년이다. 7대째 한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장인의 와플’에 담긴 비법과 고매한 철학이 궁금했다. 메종 당두아의 요리사 파스칼 기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재료와 기구, 정확한 요리법만 있으면 돼요. 와플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음식인걸요.”
기롬스는 서울 신라호텔이 각국 최고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그는 메종 당두아에서 14년간 일한 장인이다. 그에 따르면 와플은 벨기에에서 특별할 것 없는 생활 음식이다. 이들의 전통 식문화로 “기원이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 만큼” 오래됐다. 메종 당두아의 직원은 “우리 딸도 8살 때부터 만들었을 만큼 벨기에 사람이면 너끈히 만드는 음식”이다. 국내에서도 ‘와플’ 하면 자연스레 벨기에를 떠올린다. 다만 엉뚱하게도 국내에서 먹는 와플의 대부분은 미국식으로 변형됐다는 점이 다르다.
벨기에 와플에는 이스트를 넣는다. 반면 미국에서 변형된 와플은 베이킹 파우더를 넣어 빵 같은 식감이 난다. ‘정통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다. 동부 도시 리에주를 중심으로 한 리에주 와플, 수도 브뤼셀의 브뤼셀 와플로 나뉜다. 둘은 몇 년마다 한쪽이 승기를 잡으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라이벌 관계다. 기롬스는 “브뤼셀에서 절대 리에주 와플이 맛있다고 얘기하면 안 되고, 리에주에서는 브뤼셀 와플 칭찬이 금기”라고 말했다.
와플의 기본 재료는 밀가루, 설탕, 소금, 버터다. 리에주 와플은 여기에 비트 뿌리로 만든 펄슈거를 넣는다. 펄슈거는 천일염 크기의 붉은 설탕이다. 펄슈거 덕분에 리에주 와플은 색이 짙고 단맛과 함께 바삭바삭 씹히는 느낌이 난다. 질리지 않는 단맛이라 처음 먹어도 쉽게 반한다. 모양도 둥그스름하다.
브뤼셀 와플은 딴판이다. 거품 낸 달걀 흰자를 반죽에 섞는다. 단맛이 적고 수수하다. 처음 베어물면 밍밍하게 느껴진다. 색이 연하고 모양은 네모나다.
“리에주 와플은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먹어도 돼요. 10시, 2시, 4시처럼 배고플 때 간식으로 즐기죠. 브뤼셀 와플은 접시에 항상 예쁘게 차려 먹어요. 디저트처럼 가볍게 설탕을 뿌려 먹거나 초콜릿, 꿀을 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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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당두아의 요리사 파스칼 기롬스가 신라호텔 프로모션을 위해 벨기에 현지에서 조달한 재료로 직접 만든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플을 들어보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
“1980년대를 기점으로 와플이 길로 나왔어요. 전통적으로 먹던 음식을 길에서 편하게 먹기 시작했죠. 와플이 상업화되자 점점 세계로 퍼지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여행객을 통해 전파된 듯합니다.”
메종 당두아 역사를 보면 벨기에 음식의 세계화 과정이 한눈에 보인다. 이들은 1829∼1980년대까지 1개 상점만 운영했다. 1983∼2010년 벨기에 내 지점이 7개로 늘었고 이후 먼 아시아까지 명성이 퍼졌다. 이곳에는 40년간 함께한 제빵사, 43년간 일하다 퇴사한 비서가 있을 만큼 가족적이다. 기롬스가 전한 ‘최고가 된 비법’도 이곳의 역사만큼 담담했다. 원론적이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내용이었다.
“우리는 벨기에에서 나온 천연 재료만 사용하기에 좋은 와플을 만들어요. 믿고 살 만한 식재료만 거래하죠. 중요한 건 특별한 맛이 아니라 음식의 질이에요. 우리 가게 근처에 작은 와플집이 생겼는데 가격이 3배나 쌌어요. 그곳에서 드신 분들이 다시 우리 집을 찾더라고요.”
와플의 주성분이 탄수화물이라 건강을 위해 적게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와플을 변호했다. 와인이 몸에 좋지만 많이 마시면 해롭듯 ‘절제’가 중요하지 음식 자체를 나쁘게 봐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와플에는 인상적인 맛이나 치명적인 중독성이 없다. 그럼에도 지구촌 사람들은 브런치나 디저트로 종종 와플을 찾는다. ‘세계 최고’라는 와플 장인을 만나고도 ‘와플이 세계로 퍼진 비결이 뭘까’라는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다만 그가 와플을 좋아하는 이유 속에서 작은 단서를 본 듯했다.
“제게 와플은 어릴 때 엄마와 산책하다가 쉽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에요. 친구들과 오후에 배고플 때 접시에 담아 나눠먹을 수 있죠.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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