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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인종청소 견뎌낸 보스니아 선수들의 '축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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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16 17:24:17 수정 : 2014-06-16 17: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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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새내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에 경기 시간 90여 분 내내 당당히 맞서며 '스코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보스니아는 16일(한국시간) 오전 7시부터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에스타디오 두 마라카낭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F조 1차전에서 전반 3분 만에 세아드 코라시냑(21·샬케)의 자책골로 어이 없이 1점을 내준 뒤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손색 없는 경기를 펼쳤다.

메시를 꽁꽁 묶었던 보스니아 후반 20분 순간의 허점을 보이며 메시에게 추가골을 헌납해 0-2로 뒤졌다.

그러나 보스니아는 포기할 줄 몰랐다. 후반 39분 베다드 이비세비치(30·슈투트가르트)의 만회골로 맹추격에 나섰다. 다만 아르헨티나를 넘어서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보스니아는 1992년 구유고연방에서 독립된 지 무려 22년 만에 꿈의 무대를 밟았다.

뛰어난 공격력과 안정된 수비력을 바탕으로 유럽예선 G조에서 그리스·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리히텐슈타인과 경합, 8승1무1패를 거둬 그리스과 승점(25)에서 동률을 이룬 뒤 득실차제치고 조 1위로 브라질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그리스와 승점(25점)은 같았으나 골득실(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4, 그리스 +8)에서 압도하며 조 1위로 브라질행을 확정했다.

1992년 옛 유고 연방에서 분리 독립된 보스니아는 유럽 예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열정과 국민들의 성원 속에 마침내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이뤘다. 무려 22년이나 걸렸다.

이같은 열정과 성원의 밑바탕에는 같은 유고연방 출신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서 활약한 것에 대한 경쟁심이 작용했다. 특히 세르비아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이 컸다.

보스니아는 지난 1992년 3월 국민투표를 통해 유고연방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인구의 35%에 달하는 세르비아계가 이에 반발, 독립을 막으려는 세르비아 중심의 신유고연방의 지원을 받아 무장봉기하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이후 1995년11월까지 무려 3년8개월 동안 계속된 내전 동안 공식집계로만 약 10만 명이 숨지고 난민 약 230만 명이 발생했다. 특히 세르비아계에 의한 보스니아계(무슬림을 믿는 슬라브인)에 대한 '인종청소'가 자행돼 보스니아인 여성 약 2만명이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내전은 미국, EU, 러시아 등의 중재로 1995년 12월 미국의 데이튼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당사국들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종식됐다. 그러나 상처는 지금까지도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주로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태어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 역시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보스니아 내전을 피할 수 없었다.

조국에 월드컵 첫 득점을 안겨준 이비셰비치는 세르비아군에 의해 할아버지가 살해되고 고향 마을이 잿더미가 될 때 어머니가 숲속에 굴을 파서 그와 여동생을 숨긴 덕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브라질월드컵 유럽예선 10경기에서 10골, 2013~201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 공동 6위(16골) 등을 기록한 '주포' 에딘 제코(28·맨체스터 시티)는 도시를 포위한 세르비아군의 매일 이어진 포격으로 약 1만1000명이 희생된 사라예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앞서 제코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싸움, 전쟁, 총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생존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이주, 어린 시절을 보낸 선수들도 많다.

미드필더 미랄렘 피야니치(24·AS로마)는 룩셈부르크, 세나두 룰리치(28·라치오)는 스위스, 하리스 메두야닌(29·가지안테프스포르)는 네덜란드로 각각 몸을 피했다. 또, 미드필더 세야드 살리호비치(30·호펜하임)·수비수 에르민 비차크치치(24·브라운슈바이크)·골키퍼 아스미르 베고비치(27·스토크시티) 등은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비세비치 역시 내전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뒤, 폐허가 된 조국을 떠나 2000년 스위스로 이주했다 2002년 다시 미국으로 옮긴 뒤 그곳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먼지처럼 흩어졌던 보스니아 출신 선수들을 하나로 모은 것은 보스니아의 '축구 전설' 사펫 수시치(59) 감독이다.

수시치 감독은 유고슬라비아(옛 유고연방) 리그가 낳은 특급 미드필더로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맹(1981~1991년) 등에서 활약햤다. 1977년 옛 유고연방 대표가 돼 1982스페인월드컵·프랑스 유로1984(이상 조별리그 탈락)·1990이탈리아월드컵(8강 탈락) 등을 통해 성가를 높였다.

1994년 프랑스 AS캉에서 감독 데뷔한 뒤, 1995~2009년 터키리그의 이스탄불스포르 등의 강팀들을 지휘했다. 2009년12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지휘봉을 잡고 있다.

수시치 감독은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와 최대한 잘 싸우는 것이었다"며 "우리는 전반전과 후반전에서 잘 뛰었다. 훌륭한 경기를 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사령탑을 지낸 덕에 참화를 빗겨갈 수 있었던 감독과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이 죽기 보다 싫어하는 '전쟁'을 시작했다. 22년이 지나도록 내전의 상흔을 미처 치유하지 못한 조국과 국민들을 위해 벌이는 '축구전쟁'이다. 이 신성한 전쟁에서 그들이 어떤 전리품을 획득할지 주목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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