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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핏빛 당쟁’ 기축옥사의 비밀

입력 : 2014-05-30 21:09:16 수정 : 2014-05-30 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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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저널 그날’ 조선시대 선조 22년. 선비 1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피바람이 분다. 정여립 역모 사건으로 시작된 기축옥사. 이 엄청난 정치 참극의 중심엔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 있었다.

KBS1 ‘역사저널 그날’은 6월1일 오후 10시30분 조선 조정을 공포로 몰아넣은 기축옥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6월1일 방송하는 ‘역사저널 그날’에선 역사학 교수, 영화감독, 시인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출연해 기축옥사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KBS 제공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겨 잘 알려진 정철.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잘 알려진 이항복은 그에 대해 “반쯤 취해서 즐겁게 손뼉을 마주치며 이야기 나눌 때 바라보면 마치 하늘나라 사람인 듯하다”고 했다.

그런 정철이 1589년 기축옥사의 수사 책임자인 위관(委官)에 임명된다. 당시 정계에서 물러나 있던 정철은 기축옥사를 통해 권력의 정점에 선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까지 옥사에 연루되면서, 정철에게는 옥사를 무리하게 확대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기축옥사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역모 사건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충분한 증거에도 이 사건은 옥사로 확대된다. 역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모두 가혹한 국문을 받는다. 수사책임자인 정철조차도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방계 출신에서 왕위에 오른 선조. 그는 재위 기간 내내 동인과 서인을 저울질하며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다. 기축옥사 당시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을 등용해 옥사를 확대시킨 것도 선조였다.

하지만 기축옥사의 광풍이 진정되어가던 1591년, 선조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한때는 독수리의 절개를 가졌다며 총애했던 정철을 좌의정에서 파직하고, 평안도 강계로 유배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선조는 기축옥사의 모든 책임을 정철에게 돌린다.

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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