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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길 지하철 탄 역무원이 대참사 막았다

입력 : 2014-05-28 23:01:37 수정 : 2014-05-29 00: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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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역 방화 막은 권순중씨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사건은 책임의식으로 똘똘 뭉친 역무원의 희생적인 노력과 승객들의 협력으로 대형 참사 위기를 모면했다.

매봉역 역무원인 권순중(46)씨는 28일 일을 보기 위해 도곡서비스센터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오전 10시51분쯤 권씨가 노약자석 옆 출입문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 있던 조모(71)씨가 매봉역과 도곡역 중간지점에서 시너 11통과 부탄가스 4통이 담긴 가방에 불을 붙였다. 경찰조사 결과 조씨는 전동차 안에서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이고 자살을 시도했다. 

서울메트로 매봉역 역무원 권순중씨가 28일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 사건을 온몸으로 막아낸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씨는 ‘불이야’라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가슴 높이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는 불길을 잡으러 발을 급하게 움직였다. “경황이 없었다. 불을 끄면 사는 거고, 못 끄면 다 죽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50대 여성과 젊은 승객이 소화기를 건네주었다. 불을 진압하기 시작하자 조씨가 막아섰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였다. 조씨는 불이 꺼지려고 하면 다시 붙여댔다. 권씨는 “몸싸움을 한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불과 나의 전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객들에게 비상벨을 눌러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오로지 불을 끄는 데만 집중했다”며 “객차 내 시설물이 불에 타지 않는 소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 초기 진압만 잘하면 잡을 수(끌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객차가 승강장에 도착하자 세월호 침몰사고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승객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화재가 난 4번째 객차에는 50여명이 탑승했으며, 전체 열차에는 370명이 타고 있었다. 앞쪽 객차 5칸에 탑승한 승객 270여명은 문이 열리자마자 신속히 열차에서 빠져나갔다. 승강장에 도달하지 못한 뒤편 4칸의 승객 100여명은 비상문을 열고 선로를 따라 매봉역으로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서모(62)씨가 발목 부상을 입은 것 외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권씨는 열차가 도곡역에 정차해 승객들이 대피하는 와중에도 소화기를 이용해 잔불을 정리했다. 그는 방화범의 가방 안에 부탄가스 4통이 꽂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부탄가스가 폭발했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열차 탈선사고로 이어진다.

권씨는 “부탄가스가 터졌으면 저는 죽었을 것”이라며 “경찰 조사 뒤에야 알고 기절할 만큼 소스라치게 놀랐고, 진화에 실패했으면 대참사가 났을 것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자신이 운영했던 업소에 대한 보상문제로 사회에 불만을 품고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조씨를 체포했으며,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권씨는 주변의 칭찬에 고개를 저었다.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직원이라서 좀 더 사명감을 갖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혼자였으면 절대로 불을 끄지 못했을 텐데 승객들이 많이 도와줘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에 사람들이 조금씩만 도우면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에 서로 돕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칫 2003년 2월 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권씨와 시민들의 합심으로 이날 방화사건은 의자 하나를 태우는 것으로 끝났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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