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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 화재현장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주변 도로와 건물 등을 뒤덮으면서 교통이 통제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고양=연합뉴스 |
화재가 발생한 지하 1층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는 작업자 등 8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진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 근로자들은 불이 나자 모두 대피했다. 화재진압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회용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고 초기 진화에 나섰더라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불은 지하 1층에서 났는데 피해자는 대부분 지상 2층에서 발생했다. 사망자는 지하 1층에서 한 명, 터미널이 위치한 지상 2층에서 5명이 발견됐다. 두 명은 2층 매표소 인근 화장실에서 숨졌다. 2층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것은 폐쇄된 구조인데다 방화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방화벽이 지하와 상층부를 잇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설치돼 있었지만, 지상·지하의 공사관계자들이 방화 커튼 일부를 떼어놓은 채 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소방 관계자가 말했다. 방화커튼이 제거되자 에스컬레이터 공간이 화기와 연기의 통로 역할을 하며 초당 수십m의 속도로 유독가스가 윗층으로 퍼져 인명피해가 났다는 것이다.
화재 확인 즉시 안내방송을 하고 대피를 유도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건물 관리업체가 폐쇄회로TV 모니터를 감시하고 제대로 경보음을 냈는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터미널 바로 앞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75)씨는 “오전 9시4분쯤 건물 내부에서 시커먼 연기가 빠른 속도로 퍼져 나왔는데 화재 대피 방송과 경보 소리가 들린 것은 9시10분이 지나서였다”고 말했다. 일부 층에서 대피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경찰은 정해룡 경기지방경찰청 2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27일 오전 10시 합동 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예고된 사고”
터미널 매표소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들 가운데 3명이 숨졌다. 이런 탓에 평소 화재 대비 교육이 실시됐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2012년 초 터미널 건물이 정식으로 개장하기 전부터 근무를 한 한모(32)씨는 ‘예고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업허가가 나지 않는데도 홈플러스는 영업을 시작했다가 30일 영업정지를 맞았지만 이마저도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했다”며 “근무하는 동안 화재 대피 훈련이나 재난 상황에 대비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건설 기준에 따라 인테리어 자재를 불연성 소재를 쓰게 돼 있지만 이를 어기고 가연성 소재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인근 주민들이 고양터미널에서 사고 며칠 전부터 페인트 냄새 같은 화공약품 냄새가 난다고 신고했는데도 당국이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화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총체적 안전점검을 지시했지만 화재가 난 터미널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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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9시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고양시외종합터미널 내 지하 1층 화재 현장에서 검찰과 소방방재청 관계자 등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고양=김범준 기자 |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버스터미널, 홈플러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메가박스, 쇼핑센터 공사현장 등에는 모두 70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 대피 안내방송이 안 들리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연기가 나자 서로 ‘피하라’고 외치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많은 시민들은 소방대원들의 유도와 도움 아래 대피했다. 시민들은 “대피 방송이 들리지 않았는데도 ‘대피하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고 증언했다.
터미널 건물 지하 2층에 위치한 홈플러스 직원 조모(25)씨는 “오전 9시10분이 지나서야 대피 방송이 나와 손님들을 데리고 직원 출입구를 통해서 빠져나왔다”며 “천장이 타면서 연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졌다”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17)군은 2층 매표소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연기를 목격했다. 김군은 “당시 2층 버스승차장에 40여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스 운전사들이 비상구를 알려줘 가족들과 함께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양=이재호·권이선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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