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인터넷을 써야 할 일이 생겨서 찾아 다녔다. 인터넷 카페가 있다고 해서 가 봤는데, USB는 연결할 수가 없단다. 쿠바에서 인터넷은 외국인만 쓸 수 있다. 쿠바인들은 제한된 이메일만 확인할 수 있다. 회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메신저를 쓰는 것을 보고 인터넷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지만, 역시나 사내 인트라넷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USB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쿠바 정부에서 발행해 주는 인터넷 카드가 있는데, 이건 한 시간짜리다. 잠깐 쓰고 다른 지역을 가서도 또 쓸 수 있다. 이메일 3개 보내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USB에 있는 파일을 컴퓨터 하드디스크로 옮길 수는 없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전력을 다해 이메일 3개만 보냈다. 그나마 30분밖에 안 걸려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들을 쿠바에 있으니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됐고, 또한 내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쿠바에서는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용품을 찾으러 다닐 때는 멀리 인터내셔널 병원까지 가야만 했다. 슈퍼에서는 판매하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해변 마을에서는 수입품 파는 곳이나 향수와 화장품을 파는 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에는 그런 곳도 없다. 병원까지 가서 겨우 구입할 수 있는 걸 보면, 내가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게 되었고, 특별한 일들이 오히려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내 옆을 지나가던 트럭버스의 사람들이 올라 타라고 권했지만 나는 천천히 걷기를 택했다. |
트리니다드 산으로 가며 만난 노새와 할아버지. |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펼쳐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엄한 풍경이다. 외길로 난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저 산 아래까지 갈 듯했다. 하지만 그늘이 없는 이 뙤약볕 아래 걸으려고 하니 아까 놓친 트럭버스가 생각난다. 나와 같이 버스를 놓친 아이들도 걸어가고,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까지 동행해 준다. 철교 위로는 지난번에 봤던 작은 기차가 지나간다.
언덕 위 교회는 폐허가 됐지만, 그곳에 오르면 트리니다드 전경이 펼쳐진다. |
마을로 돌아와 언덕 위의 교회까지 걸어갔다. 트리니다드 지도에 나와 있는 모든 곳을 다녀보는 듯하다. 교회 표지가 있어서 가본 것뿐이다. 가는 길에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세 개의 십자가’가 있다. 뭔가 특별할 것 같았지만 문자 그대로 세 개의 십자가만 있었다.
힘들게 오른 언덕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
그러면서 나의 여행은 바람이 ‘바모스’를 외쳐 준다. 여행에서 잊을 건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 또다시 걷게 만들어 준다. 언덕 위에서 그 강렬했던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모든 것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내리고 지열도 식어갈 때쯤에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트리니다드의 강렬한 태양은 지는 것 또한 강렬했다. |
바람을 벗삼고 맥주를 마시며 듣는 이 음악이 여행자를 취하게 해 준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춤을 추고, 은은한 달빛은 웃는 얼굴로 빛난다. 지상에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살사를 추고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사이로 따뜻한 빛이 흐르고 있다. 그 빛은 하나의 도형을 만들며 그림이 되어 간다. 이곳에서는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국적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 음악에 취해 있고, 몸은 자연스레 음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쿠바의 낯선 일상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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