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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모스" 신나게 외치는 사람들… 더불어 함께하는 문화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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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0 21:53:21 수정 : 2014-12-22 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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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11〉 걸어서 구석구석 여행
쿠바 트리니다드는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곳으로 어디를 가든 볼거리가 많다. 굳이 이곳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면, 마을에만 있어도 충분히 재밌다.

하루는 인터넷을 써야 할 일이 생겨서 찾아 다녔다. 인터넷 카페가 있다고 해서 가 봤는데, USB는 연결할 수가 없단다. 쿠바에서 인터넷은 외국인만 쓸 수 있다. 쿠바인들은 제한된 이메일만 확인할 수 있다. 회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메신저를 쓰는 것을 보고 인터넷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지만, 역시나 사내 인트라넷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USB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쿠바 정부에서 발행해 주는 인터넷 카드가 있는데, 이건 한 시간짜리다. 잠깐 쓰고 다른 지역을 가서도 또 쓸 수 있다. 이메일 3개 보내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USB에 있는 파일을 컴퓨터 하드디스크로 옮길 수는 없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전력을 다해 이메일 3개만 보냈다. 그나마 30분밖에 안 걸려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들을 쿠바에 있으니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됐고, 또한 내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쿠바에서는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용품을 찾으러 다닐 때는 멀리 인터내셔널 병원까지 가야만 했다. 슈퍼에서는 판매하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해변 마을에서는 수입품 파는 곳이나 향수와 화장품을 파는 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에는 그런 곳도 없다. 병원까지 가서 겨우 구입할 수 있는 걸 보면, 내가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게 되었고, 특별한 일들이 오히려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내 옆을 지나가던 트럭버스의 사람들이 올라 타라고 권했지만 나는 천천히 걷기를 택했다.
트리니다드 산으로 가며 만난 노새와 할아버지.
트리니다드에는 폭포까지 갔다 올 수 있는 투어가 있다. 국립공원이 있어서 그곳까지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다. 산을 따라 걸어가니, 마을은 멀어지고 돌아갈 길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는 생각에 산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 트럭버스가 가끔 지나가는데, 타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트럭 버스 안의 사람들은 “바모스(Vamos)”를 연신 외친다. 바모스는 ‘가자’라는 의미의 스페인어로, 더불어 함께하는 문화가 많은 중남미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신나고 힘차게 바모스를 외친다. 타고 싶었지만, 사진 찍으면서 천천히 걸어갈 만했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펼쳐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엄한 풍경이다. 외길로 난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저 산 아래까지 갈 듯했다. 하지만 그늘이 없는 이 뙤약볕 아래 걸으려고 하니 아까 놓친 트럭버스가 생각난다. 나와 같이 버스를 놓친 아이들도 걸어가고,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까지 동행해 준다. 철교 위로는 지난번에 봤던 작은 기차가 지나간다.

언덕 위 교회는 폐허가 됐지만, 그곳에 오르면 트리니다드 전경이 펼쳐진다.
돌아갈 힘을 남기기 위해서 돌아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내리막길이라서 쉼없이 온 저 길은 돌아서보니 오르막길이었다.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문짝에라도 매달릴 판이었는데도,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겨우 돌아온 마을 초입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물’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를 데리고 아무 집에나 간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 한 바가지를 주는 인심은 어디를 가든 존재한다. 물을 들이켜니, 정신이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와 언덕 위의 교회까지 걸어갔다. 트리니다드 지도에 나와 있는 모든 곳을 다녀보는 듯하다. 교회 표지가 있어서 가본 것뿐이다. 가는 길에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세 개의 십자가’가 있다. 뭔가 특별할 것 같았지만 문자 그대로 세 개의 십자가만 있었다.

힘들게 오른 언덕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하지만 언덕을 올라, 폐허가 되어 있는 그 교회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없진 않았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트리나다드의 전경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더위에 힘들고 지칠 때 이런 탁 트인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이곳까지 올라올 때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이제는 왜 이곳에 올랐는가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힘들지만 그곳에 오르면 항상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오르는 게 아닐까. 사실은 보상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주는 바람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모든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망각’이라는 특권을 가졌다고 한다. 망각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살아가면 괴로워서 살 수 없어 생존본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나의 여행은 바람이 ‘바모스’를 외쳐 준다. 여행에서 잊을 건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 또다시 걷게 만들어 준다. 언덕 위에서 그 강렬했던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모든 것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내리고 지열도 식어갈 때쯤에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트리니다드의 강렬한 태양은 지는 것 또한 강렬했다.
그곳에는 음악연주가 한창이었다. 어쩌면 그 음악에 이끌려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입장료가 없는 연주팀이다. 입장료를 받았던 팀은 유명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 이 밴드의 음악이 더 좋다.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와 현악기의 소리가 잘 어울린다. 그리고 할아버지 보컬과 젊은이들의 화음이 악기 소리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쿠바의 밴드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섞여 있다. 연륜이 있는 어르신과 패기있는 젊은이가 어우러져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 준다.

바람을 벗삼고 맥주를 마시며 듣는 이 음악이 여행자를 취하게 해 준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춤을 추고, 은은한 달빛은 웃는 얼굴로 빛난다. 지상에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살사를 추고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사이로 따뜻한 빛이 흐르고 있다. 그 빛은 하나의 도형을 만들며 그림이 되어 간다. 이곳에서는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국적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 음악에 취해 있고, 몸은 자연스레 음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쿠바의 낯선 일상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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