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듬해 9월 항소했고, 버지니아주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은 3일(현지시간)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항소법원은 듀폰이 주장하는 영업비밀의 상당 내용이 독일 기업 아크조와의 소송과정에서 이미 일반에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는 코오롱 측 주장을 1심 재판부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항소법원은 1심에서 재판부를 다시 구성해 심리할 것을 주문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1심 재판에서 배제된 증거들을 제출할 수 있게 돼 재심에서는 보다 공정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심 판결은 여러모로 코오롱에 불리하게 진행돼 뒷말이 무성했다. 듀폰의 소송대리를 맡은 로펌의 변호사 출신이 재판장을 맡은 것부터가 공정성에 어긋났다. 이런 이유로 코오롱은 재판장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심원단 구성도 문제가 많았다. 재판이 진행된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아라미드 섬유를 생산하는 듀폰의 공장이 있는데, 현지 주민으로 배심원단이 꾸려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20년 동안 생산, 판매를 금지한다는 판결도 명백한 월권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 제품인 ‘헤라크론’의 시장 진출을 원천봉쇄한 것인데, 다행히 이번 항소심에서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
코오롱 측은 항소심에서 유리한 판결이 나옴에 따라 경영상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그동안 소송 때문에 위축된 북미, 유럽 등 해외 영업이 활발해 지면서 타이어코드, 에어백 등의 제품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코오롱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코오롱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항소법원의 재심 결정은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아닌 만큼 재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라미드 섬유 강철의 5배 강도
아라미드는 방탄복, 광케이블, 우주항공소재 제조에 주로 쓰이는 초강력 합성섬유로,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다. 단면적이 불과 1㎟(직경 약 1.6㎜) 정도의 가느다란 실로도 성인 5명에 해당하는 350㎏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 다른 합성섬유는 200도가 넘으면 열에 녹는 데 비해 500도가 넘어야 비로소 검게 변한다. 영하 160도에서도 특성을 유지한다.
분자구조에 따라 메타계와 파라계로 대별된다. 헤라크론은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파라계에 속한다. 파라계 섬유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6만t 정도 생산돼 시장규모는 1조8000억원에 달한다. 1973년 세계 최초로 ‘케블라’라는 브랜드로 생산한 1위 업체 듀폰은 일본 데이진과 더불어 시장을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코오롱은 연간 5000t(800억원)가량 생산 중이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황계식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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