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알릴 길 없어 편법 부추겨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정치실험 카드를 선보였다. 각각 기초선거 무공천의 대선공약 철회에 따른 역풍을 막으려는 고육책이고 야권 통합신당의 대의명분이 된 정당민주주의 구현 전략이다. 하지만 현실을 간과한 새 정치실험은 돈 경선이라는 후폭풍에 직면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가는 만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들은 경선 비용 문제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당이 상향식 공천제를 전면 도입하면서 경선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줄어 경선 참여자가 내야 할 기탁금이 껑충 뛰었다.
경기지사 경선은 권역별 순회 대회가 늘면서 비용만 약 4억5000만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4명이 출마한 만큼 분담하면 1억원 정도를 내야 한다. 김학용 경기도당위원장은 30일 “경기지사 경선은 행사비와 5개 지역 대관비 등으로 2억5000만원 정도 들어 대략적으로 총 4억5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행사비는 후보 부담을 안 주는 방향으로 해달라고 당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텃밭’ 대구시장 경선 비용도 3억2000만원에 달해 4배수로 압축된 후보 1인당 8000만원을 내야 한다. 홍준표 지사와 박완수 전 창원시장의 2파전으로 압축된 경남지사 경선비용도 2명이 각각 8000만원씩 기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전시장 경선비용도 무려 2억4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컷오프를 통과한 노병찬·박성효·이재선 예비후보가 8000만원씩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북지사 경선은 4명의 후보 중 2명이 컷오프된 뒤 윤진식 의원과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만 남게 되면서 각각 7000만원을 내야 한다. 당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경선지역이 많아 이번에는 당에서 보조하는 금액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식 경선 비용은 비공식으로 들어가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실제 비공식 경선비용을 합치면 후보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2010년에 이어 이번에도 광역단체장으로 출마한 한 후보는 지난 선거에서 40억원대 빚을 졌고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년 전 또 다른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섰던 여권의 한 인사도 최근 기자와 만나 “선거 직후 당에서 선거비용으로 쓴 2억원을 반납하라고 해서 냈는데 큰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포스트커뮤니케이션 이형락 대표는 “새누리당이 순회경선을 하게 되면 조직 동원 비용이 제일 많이 들 것”이라며 “돈 많은 사람들이 유리한 게 현행 경선 방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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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정책선거 외치지만… 30일 오후 프로축구 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 앞에서 경기도선관위 직원들이 6·4 지방선거가 정책 선거로 진행되길 기대한다는 의미의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다. 수원=연합 |
신당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기초선거 출마자들은 무공천으로 인한 후보 난립과 선거 결과에만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선거비용이라는 또 다른 복병이 있는지 몰랐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천을 하지 않는 탓에 중앙당 차원에선 돈 들 일이 없지만 탈당한 뒤 각자 도생해야 하는 후보들은 홍보·조직운영·표 관리 등에 지출해야 하는 돈이 클 것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신당 소속의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출마 예정자는 통화에서 “기초선거에서는 돈을 쓰는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구청장처럼 범위가 넓으면 표 매수와 식사 제공은 불가능하지만 기초의원은 박빙이면 충분히 돈을 더 쓰고 표를 구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충남 지역 기초단체장 출마자도 “무공천으로 자기 기호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며 “5월15일 후보 등록 이전과 이후에 서로 다른 홍보를 해야 하니 금전적으로는 당연히 돈이 더 든다”고 토로했다.
한 기초의원 예비후보는 “자기 특성에 맞게 컨셉트를 잡아야 하니 상징물 같은 것을 만드느라 돈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 당직자는 “홍보문제가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엔 중앙당이 각 시도당을 통해 후보 홍보도 해줬는데 무소속으로 나가게 되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당위원장인 김태년 의원은 “기초선거 비용은 보통 4000여만원”이라며 “과거 정당공천 시에는 그 정도로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천종·김채연·박영준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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