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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넬먼 지음/이정연 옮김/시공아트/2만원 |
“미술계에서는 보통 돈거래가 무기명으로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 ‘어떤 신사의 작품 판매건’과 같은 식이죠. 철저한 비밀주의는 악당들에게 아주 유리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술품 약탈과 도난은 영화에 나오는 먼 세계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를 오가며 미술품 도난 사건 담당 형사와 FBI직원, 작품을 도난당한 미술관장, 미술품 도둑 등 12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한 저자는 “한국은 훔친 작품이 세탁되는 제3국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예술품 도난은 국경을 초월하며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암거래 시장에 나오는 물품은 누구나 아는 명화가 아니다. ‘프로 도둑’들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수십억달러의 그림을 훔치면 언론의 관심을 끌고 경찰 수사로 이어진다.
불법 거래 시장의 진짜 주인공은 소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덜 유명한 그림들이다. 런던 ‘덜위치 미술관’에 있는 렘브란트 초상화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은 아트 딜러가 범죄 조직과 연합해 빼돌리는 등 각기 다른 이유로 네 번이나 도난당했다. 다행히 매번 미술관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미술관이 고객이나 기증자가 알게 되는 걸 두려워하며 도난 사실을 숨긴다.
저자는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미술관, 갤러리, 옥션 하우스, 컬렉터들이 협력해 도난 미술품 목록을 공유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독일 뮌헨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 1500여점이 발견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나치는 문화를 약탈하고 기반을 무너뜨리며 단시간에 동유럽의 많은 소수민족을 말살시킬 수 있었다. “미술계 비밀주의를 걷어내지 않으면 각 나라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미술품 도난 사건을 둘러싼 미술관·경찰·도둑,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보물을 발견한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고백을 한데 모아 범죄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암시장의 작동 원리와 돈 세탁 과정, 도난 미술품 알선 중개인이 법망을 빠져나간 수법 등 뒷거래 시장의 민낯까지 담았다. 캐나다 기자의 취재 일기지만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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