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서 열혈매니저 연기
배우 김강우(36)는 2000년대 초,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피’였다.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공식 데뷔작인 그는 이듬해 MBC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충무로에서도 ‘블루칩’으로 통했다. ‘실미도’(2003) ‘꽃피는 봄이 오면’(2004)에서의 단역을 거쳐 2005년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에 캐스팅되며 주연배우로 발돋움했다. 그 이후로도 ‘경의선’(2006) ‘식객’(2007) ‘가면’(2007) ‘마린보이’(2008) ‘오감도’(2009) ‘무적자’(2010) ‘인류멸망보고서’(2011) ‘돈의 맛’(2012) ‘사이코메트리’(2013) ‘결혼전야’(2013) 등 일 년에 한두 편씩 꾸준히 출연하며 영화판에서 입지를 굳혔다.
지난 13년간 다른 분야에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셈이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터. 김강우는 첫 작품 제목이 그랬듯 오늘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만큼 대중이 그의 작품을 다 알아준 것은 아니다. 흥행을 기대했지만 낙심할 때도 많았다. 그 때마다 김강우는 좌절하지 않고 극장가 문을 두드렸다. 계속 두드리니 반응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세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저라고 왜 곁눈질 하지 않았겠느냐”며 “사실 10년 넘게 연기생활하면서 부침이 있을 때마다 배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잡아준 건 아내였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지난 20일 개봉한 ‘찌라시: 위험한 소문’(감독 김광식)에서 그는 증권가 찌라시 헛소문 때문에 소속 여배우를 잃은 매니저 우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우리 사회의 치부이기도 한 소재를 전면에 끌어와 사실과 코미디를 뒤섞어 재미있는 오락영화 한 편이 완성됐다.

다음은 김강우와 나눈 일문일답.
-영화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이번 작품은 흥행도 기대해볼 만한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라 영화적으로는 좀 더 꾸며야 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김광식 감독님께 그런 부분을 얘기했더니, 이 영화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다뤄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의구심은 좀 있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감독님 생각이 전적으로 맞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관객들이 영화 속 상황을 직시하고 빨리 이입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우리 생활과 동 떨어진,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라서 그랬던 거죠.
-찌라시의 희생자 중에는 동료 연예인들도 있어서, 출연이 꺼려지는 면도 있었을 텐데.
▲고민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찌라시의 내용이 다 사실이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다만 찌라시가 그만큼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싶었어요. 극 중 우곤이 자신이 관리하는 여배우의 말도 못 믿어서 다시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게 진짜 무서운 거예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거. 머릿속은 100%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찌라시가 돌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이 싹트는 거죠. 정말 찝찝하면서 소름 끼치더라고요. 옆에 있는 사람도 그런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겠어요.
-그런데 정말 우곤 같은 열혈 매니저가 있을까.
▲우리 매니저요?(웃음) 우곤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이야기에 개연성을 불어넣는 장면이 필요했고 실제로 찍었어요. 그런데 앞부분에서 편집이 많이 됐죠. 감독님은 그런 부분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 거라고 판단하셨나 봐요. 사실 우곤이 끝까지 찌라시의 실체를 파헤치는 건, 자신의 여배우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자신의 모든 걸 그 여배우에게 걸었기 때문이죠. 그 모든 게 찌라시 한 줄 소문에 싹 날아가 버린 거예요. 얼마나 기막히고 화가 났겠어요. 또 한편으로는 여배우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고요.
-우곤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렸나.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 좋았어요. 그냥 일반인이죠. 정의감에 불타서도 아니고, 그냥 보통사람인데 복수를 하고 싶고. 차성주 같은 악인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심지어 싸움도 잘 못해요. 영화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낯선 분위기가 좋았어요. 한 마디로 ‘날 것’ 같은 사람이죠. 작품 선택할 때도 그런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유독 작품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역을 많이 맡는다. 배우 김강우의 정의로운 이미지 때문인가.
▲하하. 이번엔 좀 달라요. 우곤은 정의감에 똘똘 뭉친 인물이 아니거든요. 그냥 ‘찌라시 대체 누가 왜 만든 건데?’하며 궁금해 하고 범인 찾아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일이 점점 커진거지. 뒤에 혼자서는 감당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숨어 있었죠. 실제 저라면… 저라도 아마 궁금해서라도 캐내긴 했을 거예요. 그 용기가 어디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악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예전에 ‘남자이야기’란 드라마에서 악역을 한 적 있어요. 다시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아니고 좀 아껴뒀다가 나중에요.
-13년간 줄곧 한 길만을 걸어온 느낌이다. 연기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
▲저라고 왜 없었겠어요.(웃음) 연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고 있었고, 다른 일을 해볼까 곁눈질도 수 없이 해봤어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도 있잖아요. 다행히 배우 10년차가 되니까 뭔가 깨달음이 생기더라고요. 처음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민도 가려고 했고,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어요. 와이프를 안 만났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일이라는 게 다 잘 될 수도 없고, 흥행결과가 매번 좋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때마다 절 잡아준 사람이 아내였죠.
-어떤 점이 힘들었나.
▲옛날에 이 일(배우)은 버틴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었어요. 말이 버틴다는 거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고, 때로는 자학하고, 그러다 회복하고 우울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과정의 반복이에요. 정신적으로 기댈 데가 없으면 정말 힘든 직업이죠.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다가올 40대도 준비해야 할 때인데.
▲배우로서의 각오나 계획도 있겠지만, 제 인생은 훨씬 더 큰 범주에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의 삶은 일부분에 불과하죠. 더 크고 종합적인 삶의 계획을 세우고 싶어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