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상봉 후 함께 모여 식사
서로 음식 먹고 ‘러브샷’도 “통일될 때까지만 기다려줘.”
북녘의 동생 홍영옥(83·여)씨는 21일 구급차에 누워 있는 언니 홍신자(84)씨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척추 수술을 받은 직후인데도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구급차에 실린 채 상봉을 강행했다. 영옥씨는 울면서 “언니, 나 기쁜 마음으로 간다. 아무 걱정 하지 마. 이렇게 만났으니까 원이 없지”라고 말했다. 언니는 “안타깝고 슬프고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생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이날 낮 12시30분, 홍신자씨를 태운 구급차량은 남한을 향해 출발했다. 64년 만의 재회,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건강 문제로 ‘구급차 상봉’을 한 홍신자씨와 김섬경(91)씨는 이날 개별상봉 일정까지만 소화하고 남한으로 귀환했다. 22일까지 이어지는 추가 일정을 감당하기에 무리라는 의료진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김씨가 북한에 남겨둔 남매는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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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둘째날인 21일 북쪽 가족들이 개별상봉을 하기 위해 금강산 외금강호텔 앞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외금강호텔 남측 숙소에서 진행된 개별상봉에서 남북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주려고 들고 온 ‘선물 보따리’부터 풀어놨다. 남쪽 가족들은 대부분 대형 여행가방 2개에 옷과 의약품, 초코파이, 생활용품 등을 가득 채워 북측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남쪽 김동빈(80)씨는 누나 정희(81)씨와 동생 정순(58·여), 동수(55)씨에게 “모두 건강해서 기쁘다. 항상 건강하고 통일이 되면 다시 보자”라고 말하며 오리털 점퍼와 부츠 등 선물을 안겼다. 남쪽 가족들은 “달러를 좀 줬는데 제대로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나 “선물을 주니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더라”라고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북쪽 가족들도 남쪽 가족들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들은 “수령님(김정은)이 다 준비해줬다”며 대평곡주와 평양술, 백두산 들쭉술이 담긴 술세트와 식탁보를 선물했다.
남쪽의 한 이산가족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동생이 체제 선전 얘기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안타까워하며 “동생이 갑자기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라고 털어놨다.
오전 9시쯤 시작돼 11시30분쯤까지 이어진 가족 개별상봉 후엔 가족들이 점심 테이블에 다시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수십년 만의 재회로 인한 서먹함은 서로 음식을 먹여주고 술을 따르는 사이 금세 사그라졌다. 점심 식사로는 대하, 편육, 빵, 포도주, 인삼주 등이 제공됐다. 전날 42년 만에 눈물의 상봉을 한 납북어부 박양수(58)씨와 동생 양곤(52)씨도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친밀해졌다. 양곤씨는 취재진에 “다시는 만나지 못할 형님을 보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했다.
형제는 40도짜리 평양술로 ‘러브샷’을 하고 서로 음식을 덜어주기도 했다. 6·25전쟁 때 홀로 남하한 박운형(91)씨는 63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 자리였다.
김민서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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