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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칼럼] 강대국 정치와 중견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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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칙 입각 ‘중견국 외교’ 표방
열강 중심 국제정치 새 담론 펴야
‘국제정치는 곧 권력정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International politics is power politics’라는 영어 표현의 번역인데 국제정치는 도덕이나 법의 역할이 미약하고, 주로 권력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번역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영어 단어 파워(power)에는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가라는 뜻이다. 강대국(great power), 초강대국(superpower)이니 할 때의 파워가 바로 그런 의미다. 그것을 복수(powers)로 쓰면 ‘열강(列强)’이 된다. 이렇게 볼 때 파워 폴리틱스란 바로 강대국 정치다.

이 말이 함축하는 의미는 이렇다. 국제정치의 주체는 오로지 강대국이다. 그들 사이의 세력다툼의 결과 세력균형의 법칙이 생기고 국제질서가 안정되거나 불안정해진다. 약소국은 객체에 불과하다. 강대국들은 세력다툼을 위해 때로 약소국을 돕고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또 희생시키기 일쑤다. 도덕이나 원칙 따위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또한 권력정치다.

그런 국제정치에서 약소국의 삶은 위태롭고 피곤하다. 세력균형의 흐름을 적시에 읽어야 하고 강대국이 쉽게 넘보지 못할 정도의 최소한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작으나마 파워(small power)라는 소리를 듣고 주권평등의 원칙을 내세울 여지가 생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강대국, 약소국 말고 중견국(middle power)이라는 말이 있다. 강대국이 되기엔 모자라지만 그냥 약소국으로 남기엔 뭔가 억울한 캐나다, 호주 등이 내세운 말이다. 권력정치 속에서 도덕과 원칙에 입각한 외교, 곧 ‘중견국 외교’를 표방한다.

그런데 중견국이라는 말은 사실 모호하기 짝이 없다. 국가 사이의 서열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약소국 위에 자리매김하니 다분히 권력정치적 발상이다. 그러면서 도덕과 원칙에 입각한 외교 노선을 내세우니 반(反)권력정치적인 주장이다. 그래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모두 비웃을 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근년에 우리나라도 그 중견국을 자처하고 중견국 외교를 표방한다. 그동안 다져온 국력을 바탕으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주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임됐다. 최근 외교부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 등과 더불어 비공식 중견국 협의체 ‘믹타(MIKTA)’라는 조직 결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곧 권력정치’라는 주류 담론을 극복하지 못하면 비웃음거리를 자처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주류 담론이 보기에 국제사회는 국내 사회와 달리 분업과 특화가 없는 미개사회다. 인류사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식의 분업과 교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왔다. 분업이 고도화될수록 선진사회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은 안으로는 질서, 밖으로는 안보 유지라는 기초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니 국제사회는 미개사회고 국제정치는 권력정치다.

중견국 외교는 그와 달리, 국가들 사이의 기능적 분화를 전제로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제대로 기능하려면 새로운 국제정치, 국제사회의 상(像)을 보여주는 새로운 국제정치 담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견국 외교는 밖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고 안으로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한다. 한때 ‘평화애호국가’, ‘개발협력국가’라는 새로운 국가상을 추구했던 일본이 ‘정상’국가를 표방하며 우경화의 길을 걷는 것도 바로 주류 담론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견국 외교가 통하려면 새로운 국제정치 담론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계화 시대에 보다 복합적이고 분화된 국제질서의 상을 분명히 보여주고, 그 속에서 다양한 국가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모습을 명쾌한 논리로 설명해야 한다. 외교관만이 아니라 국제정치학자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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