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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나

입력 : 2014-02-14 20:45:49 수정 : 2014-02-14 20: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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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vs 슬라브 1차 대전 부르고 소수민족 전쟁까지
피로 얼룩진 비극사“분쟁의 씨앗은 강대국의 탐욕”
마크 마조워 지음/이순호 옮김/을유문화사/1만3000원
발칸의 역사/마크 마조워 지음/이순호 옮김/을유문화사/1만3000원


올해로 100주년이 된 제1차 세계대전을 영국·프랑스 대 독일의 싸움으로만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전쟁의 단초가 된 사건은 서유럽에서 한참 떨어진 발칸반도에서 일어났다. 오스트리아가 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를 지배하던 시절인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찾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저항하는 발칸 민족주의자의 소행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초만 해도 변방에 불과했던 발칸은 어떻게 세계대전의 진원지가 됐을까. 서유럽인들이 ‘야만의 땅’으로 치부한 발칸에서 벌어진 일이 어떻게 서유럽을 뒤흔들 수 있었을까. ‘발칸의 역사’는 이런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역작이다.

사라예보 사건 직후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배후로 지목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자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도 묵과하지 않고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어찌 보면 발칸에 국한될 수 있었던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 그리고 러시아와 연합한 영국·프랑스의 참전으로 서유럽까지 번진다. 이후 핵심 전장 자체도 서유럽으로 옮겨 1918년까지 독일·프랑스 국경에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끊이질 않았다.

잠시 시계를 뒤로 돌려보자. 책에 따르면 한때 발칸의 주인 행세를 한 건 옛 오스만투르크 제국이다. 19세기 후반 국력이 약해진 오스만투르크가 발칸에서 차츰 내몰리며 오스트리아가 새롭게 발칸의 맹주로 떠올랐다. 당시 발칸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그 일부는 러시아와 뿌리를 함께하는 슬라브족이었다. 자연히 러시아가 발칸에 관심을 나타내면서 이 지역은 게르만과 슬라브, 유럽을 대표하는 두 민족이 충돌하는 ‘화약고’로 돌변했다.

1차 대전은 발칸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오스트리아·러시아·오스만투르크 세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전쟁이 끝나고 발칸에는 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 등 그때까지 이름도 못 들어본 신생국이 속속 생겨났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소국이 한데 뭉친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도 탄생했다. 발칸은 잠시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오래가진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오스트리아 군대의 거센 공격을 받은 세르비아 군대가 급히 후퇴하고 있다. 1차 대전은 발칸을 좌우해 온 오스트리아·러시아 ·오스만투르크 세 강대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오른쪽 사진은 191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하필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한 탓에 발칸은 2차 대전 당시 극심한 파괴를 면치 못했다. 종전 후 옛 소련 영향권에 편입된 발칸은 냉전 기간 세계사의 무대에서 잠시 사라진다. 그랬다가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 다시금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옛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한 소수민족들 간에 벌어진 잔혹한 전쟁 때문이었다. 세르비아 대통령을 지낸 밀로셰비치가 주도한 ‘인종청소’는 인류사에 크나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책은 실타래처럼 뒤엉킨 발칸의 비극적 역사가 자의 아닌 타의에 의한 것임을 정확히 짚어낸다. 1990년대 발칸이 여러 소수민족으로 쪼개져 잔인한 전쟁을 벌일 때 서구 언론 대부분은 “발칸 사람들은 본래 폭력적이어서 유혈 사태가 잦다”고 냉소했으나, 책은 그런 편향된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던 곳에 분란의 씨앗을 뿌린 건 주변 강대국들의 그릇된 탐욕임을 분명히 한다.

지금 발칸의 포성은 멎은 상태다. 저자는 “발칸의 정치는 더 이상 영토확장과 민족의 영광에 이끌리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전쟁으로 얼룩진 지난 한 세기의 최대 피해자였던 발칸에 이제는 평화와 행복만이 깃들길 기원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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