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 여전히 상상력 자극 달은 고대 이래로 인류가 접할 수 있었던 ‘변화’와 ‘변신’의 대표적 이미지로서 상징적 징표가 되곤 했다. 어두운 암흑을 배경으로 완전히 저물었다가, 조금씩 가득 차올라 밝은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외형적 변화를 거듭하는 달은 변신의 귀재로 수많은 문화전통의 대표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의례, 문화와 예술의 영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농경과 어업의 기준이며, 항로를 구성하는 좌표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달은 많은 이의 감성적 대상으로서 절망과 희망에 대한 공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외형적 변화를 거듭하며 죽음과 생명을 되풀이하고, 저물었던 모습에서도 늘 새롭게 차오르는 달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력의 상징’이 된다. 늑대와 보름달의 전설이나 달을 보며 소망을 기원하는 의식 모두 달이 지닌 죽음과 생명, 그와 연관된 문화적 속성으로서 절망과 희망의 상징적 메시지 때문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달은 생명력을 바탕으로 풍요로움의 특별한 상징이다. 달의 상징적 구조는 ‘달-여성성-대지’로 표상되며, 만물을 낳는 생산의 주체로서 지모신(地母神)으로서 출산을 상징한다. 정월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으로서 한 해를 시작하고 풍요와 번성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의 모티브가 된다. 대부분의 의례는 지난해에 수확해두었던 씨앗을 싹 틔워 작물을 일구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며, 일부는 다음해를 위한 씨앗으로 보관하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씨앗-씨앗의 죽음-작물의 탄생과 부활-풍성한 수확-생명의 씨앗’이라는 농경의 기본 구조를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달은 농경사회가 추구하는 풍요를 향한 소망을 함축한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달이 아니라 태양이었으며, 일조량은 강우량과 더불어 풍작을 결정짓는 주된 변수였다. 실질적으로 달보다는 태양이 농경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24절기 또한 태양력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달은 여전히 ‘창조-파괴-창조’를 거듭하는 지구적 자연환경에서 출산을 관장함으로써 인류 생명의 기원이며, 에너지로서 상징적 의미를 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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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
정월대보름, 백중, 한가위 등 연중 중요한 시기의 보름달은 농경을 기본으로 했던 고대사회에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과 결실을 의미했으며, ‘농자천하지대본’을 사회의 기치를 삼았던 사회에서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구체적인 사회이념과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의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했다. 이러한 전이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달의 상징적 의미는 일정부분 상실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 해의 중요한 시점을 기념하며 풍요와 번영,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례적 행사로서의 일상적 의미를 재현한다. 농경인구가 비록 제한적이고, 사회적 기능에서 소규모라 할지라도 우리의 감성과 정서는 여전히 달을 보며,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고, 빈 형태에서 가득 찬 형태로 생명을 움터내는 달의 풍성함에 다양한 소망을 투사한다. 그리고 창조적 생명력의 달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하며 ‘변화’와 ‘변신’의 상징성으로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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