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공산진영 200m 옆 獨 ‘포인트알파’
통독 후 박물관 조성 ‘평화의 상징’으로
통행 막혀 원시 자연 모습 고스란히 보존
시민단체 주도 1만2500㎞ 연결 진행
“철조망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힘을 줘보세요. 날카로운 철조물 때문에 손이 아프죠? 옛 동독 사람들은 발로 지지할 것 하나 없이 손가락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펜스를 넘어왔답니다. 성공한 사람만 약 1000명이고, 실패해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그 열 배는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독일 튀링겐주 가이자에 있는 포인트알파 국경박물관. 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튀링겐주 책임자 카를 프리드리히 아베는 약 3∼4m 높이의 철조망 펜스를 한번 만져보라고 기자의 손을 이끌며 이렇게 말했다. 뢴은 튀링겐·헤센·바이에른 3개 주에 걸쳐 넓게 분포된 산맥으로, 그뤼네스반트가 이 지역을 가로지른다.
독일 튀링겐주 가이자에 있는 포인트알파 국경박물관. 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튀링겐주 책임자 카를 프리드리히 아베는 약 3∼4m 높이의 철조망 펜스를 한번 만져보라고 기자의 손을 이끌며 이렇게 말했다. 뢴은 튀링겐·헤센·바이에른 3개 주에 걸쳐 넓게 분포된 산맥으로, 그뤼네스반트가 이 지역을 가로지른다.

◆평화의 상징이 된 ‘철의 장막’
‘포인트알파’는 냉전 시절 서독에 주둔한 미군 캠프이자 감시 초소였다. 동·서독 국경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공산주의 진영이 불과 200m 사이에서 맞선 군사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인근의 ‘풀다 갭’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냉전시대 핵심 요충지였다. 서유럽 최대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와 바로 연결되는 데다 군사작전을 펼치기 쉬운 저지대여서 소련 등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군이 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기습 공격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양 진영 군사력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 집중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포인트알파 재단의 폴커 바우슈 대표는 “이곳의 경계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나누는 선이었다”고 설명했다.
독일 통일 후 철의 장막이 사라지면서 냉전의 상징이던 이 지역은 평화의 상징이 됐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튀링겐주와 헤센주가 함께 그뤼네스반트와 포인트알파 재단, 박물관을 만들었다. 매년 8만∼9만명의 관광객이 박물관을 찾는다.
포인트알파는 유럽 20개국에 걸쳐 조성된 자전거길인 ‘철의 장막 길’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북유럽 바렌츠해에서 유럽 동남부 흑해까지 국경지역에 만들어진 6800㎞의 이 길에서 냉전시대 역사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에는 포인트알파 외에도 그뤼네스반트를 따라 약 50개의 국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미국 온라인 신문 글로벌포스트는 포인트알파를 중심으로 철의 장막 길을 둘러보는 여정을 ‘냉전 관광’이라고 표현하며 “철의 장막을 경계로 일반적인 통행과 교역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원시 자연을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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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이자의 옛 서독 감시탑에서 바라본 옛 동독의 감시탑과 철조망 펜스. 냉전시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이 불과 200m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이곳은 이제 후대를 위한 역사·생태체험 장소로 변모했다. 가이자=백소용 기자 |
동·서독 국경이 그뤼네스반트로 변모한 것처럼 유럽 철의 장막은 ‘유럽 그린벨트’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경은 다르지만 자연은 하나’라는 슬로건 아래 그뤼네스반트를 전 유럽으로 확장한 유럽 그린벨트는 냉전시대 국경지역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유럽 생태 네트워크 운동이다. 철의 장막 길 역시 유럽 그린벨트의 일부다.
독일 그뤼네스반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독일 환경단체 베우엔데(BUND)와 자연보호청(BfN)이 2003년 국제회의에서 계획을 제안하면서 유럽 그린벨트가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찬성하고 적극적인 후원을 약속하면서 추진력을 얻게 됐다.
이듬해 슬로베니아를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3국의 국경공원이 만들어지는 등 여러 국경지대에 국가 차원의 공원 조성 노력이 시작됐다. 현재 국립공원 150곳, 동식물 보호구역 150곳,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3곳이 있다.
북쪽부터 차례로 페노스칸디아, 발트, 중유럽, 발칸 네 부분으로 나눠 각각 다른 시민단체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20개국에다 앞으로 러시아 등 4개국을 더 참여시켜 스칸디나비아에서 중부 유럽을 거쳐 남부 발칸반도까지 1만2500㎞를 잇는다는 것이 목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큰 그림은 같지만 국가별로 세부 목표와 정치·경제·사회적 수준이 달라 유럽 그린벨트 조성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베우엔데의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매니저 우베 프리델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경계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독일 그뤼네스반트를 유럽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남쪽의 옛 동유럽권 국가에서 시민의식을 높이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가이자=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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