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사랑에 빠지면 뭐가 빠져나가는 것 같을까, 채워지는 것 같을까’라고 질문한다. 투명하고 맑은 아이들은 무슨 엉뚱한 질문이냐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과연 사랑을 하면 마음이 채워질까, 마음 속에서 뭔가 빠져나갈까? 우리는 대개 사랑에 빠지면 뭔가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라 부르는 어딘가에서 무언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사랑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동성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동성이라는 수식어야말로 영화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사랑은 삶의 구성물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연인인 아델과 엠마는 종종 존재와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존재나 본질과 같은 추상어는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발견되는 단어이다. 그 전에는 철학사전에나 존재하는 이음절짜리 명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슴에 뭔가 쑥 들어오고 나면 그러니까 마음이 움직여 사랑이 시작되면 존재나 본질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지칭하는 말이 와 닿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인간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불시의 두드림 같은 것이다.

170분이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시간을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관객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이 섬세한 사랑 속에서도 감독은 단절의 사회학을 찾아낸다. 사랑에 빠지는 데야 서로의 환경이 중요하지 않지만 사랑의 단절에는 계층이 큰 이유가 된다. 상류층 에마에게는 자아의 실현이 중요하고 노동계층 아델에게는 생계가 곧 삶의 기반이다. 예술가로 성장하는 에마와 아이들에게 받아쓰기를 시키는 교사 아델, 세상 어디에서나 헤어짐의 이유는 또 비슷하다. 존재나 본질이 불어이든, 한국어이든 그것이 지칭하는 뜻이 같은 까닭이기도 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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