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치적 처단’ 뜻 더 강해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숙청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설마!’ 하는 통념을 여지없이 밟았다. 매우 특별한 집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그 해법과 전개는 파격이었다. 그 점을 노린 걸까?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하는 숙청이라는 낱말이 그래서 또 눈앞에 다가섰다.
숙청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 스탈린과 마오쩌둥, 말하자면 숙청사(史)의 스타라고나 할까? 구체적인 숫자 없이 ‘몇 천만 명’이라 표시되는 희생자의 규모도 놀랍다. 그들이 벌인 숙청극(劇)은 세계사 전당에 길이 남을 불멸의 이름이다.
대숙청(Great Purge)은 스탈린이 1인 독재체제를 세우려고 정적(政敵)을 쓸어버린 1930년대 옛 소련의 역사다. 사회주의 혁명가이며 작가인 막심 고리키(1868∼1936)의 독살사건이나, 처형의 수단으로 활용된 수많은 반혁명재판 등이 그 내용. 노벨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수용소군도’에서도 그 참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중국 대륙을 휘감은 문화대혁명(Great Cultural Revolution)은 마오쩌둥 개인숭배를 수단과 목적으로 하는 숙청의 태풍이었다. 정치적 대립 세력 제거와 함께 수천년 역사가 빚은 동양문화의 핵심을 상당 부분 파괴한 점도 특징. 장본인인 마오쩌둥 사후 권력투쟁의 또 다른 숙청의 연결고리 또한 ‘역사적’이다. 중국 현대사의 시발점 근처 얘기다.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이나 아프리카 르완다의 대량학살도 숙청의 사례들.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 하여 피의 숙청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20세기의 큰 특징’이며 ‘숙청의 방법은 암살·제명·추방·처형·체포·구금 등 여러 가지다’라고 ‘21세기 정치학대사전’은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은 참담한 숙청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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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이 숙청문(肅淸門)으로 표기(빨간색 원 안)된 18세기 한양도성대지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
1953년 서울 출신 남로당(남조선노동당) 박헌영·이승엽 등 13명을 간첩행위 혐의로 ‘숙청’한 것 등 북한 역사에서 이 단어는 바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정권의 수립 시점에 이런 참화(慘禍)가 잦았다. 숙청이 왜 필요한 것인지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전에는 숙청의 뜻이 두 개다. 첫째는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음’, 둘째는 ‘정치단체나 비밀결사의 내부 또는 독재국가 등에서 정책이나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이다. 처단(處斷)과 제거(除去)는 ‘죽인다’의 다른 표현이니, 아니 으스스한가?
엄숙할 肅과 맑을 淸을 합친 말, 숙청이다. ‘엄숙하게(엄숙할 정도로) 맑게(깨끗하게) 하다’는 말 그대로의 뜻은 사전의 첫째 풀이와 무리없이 연결된다. 문제는 오싹한 둘째 풀이다. 비약(飛躍)의 정도가 커서 괴리감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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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숙정문. 거의 문을 열지 않아 암문(暗門)이라고도 불렸던 기구한 운명의 이 문은 최근 서울시 도성도감 프로젝트로 ‘행복한 문’이 됐다. 서울도성도감 제공 |
그러다보니 원래의 뜻(말의 뜻, 첫째 뜻)은 차츰 스러졌다. ‘정치적 처단’의 뜻이 남았다. 숙청의 영어 purge나 purification(purify)도 ‘깨끗하게 하다’라는 말이 그 뜻과 비슷한 새 뜻으로 변한 것이니, 언어 간에도 이런 공통점이 있음을 알겠다. 동서양 모두 ‘정치용어’인 ‘숙청’과 ‘purge’를 절실하게 필요로 했었다는 점도 통찰할 부분.
수레바퀴 구르듯, 물 흐르듯 말이 변했다. 바퀴는 굴러 서 있는 위치도 바뀌고 흙도 묻었지만 원래의 바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은 흘러 다른 색과 냄새가 스몄지만 물의 본디가 바뀌었을까? 구르고 흘렀다는 뜻, 전주(轉注)다. 말의 뜻을 당기고[引] 늘려[伸] 새 뜻을 짓는 인신(引伸)이기도 하다. 문자학의 원리다. 숙청이 그 ‘숙청’이 된 사연이다.
문자학은 한자의 모양[형(形)], 뜻[의(義)], 소리[음(音)]의 짜임을 설명한다. (서양)언어학의 어원론(語源論·에티몰로지)과도 큰 틀에서 통한다. 어렵게 들리지만 실은 (한자의 첫 모양인) 그림 도안 몇 십 개를 활용하는, 붙이고 떼고 하는, 레고놀이다. 이 공부 없이 ‘가갸거겨’ 식으로 뜻(그림)글자 한자를 외우기만 하는 것은 넌센스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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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위에서 (배의) 삿대 잡은 손을 그렸다고 해석하기도 하는 엄숙할 숙(肅)자의 청동기 문자 금문(金文). |
이 문의 운명은 기구했다. 풍수지리상으로 지맥(地脈)에 손상을 준다 하여 늘 닫았다. 가뭄 때만 열었다. 북쪽은 음(陰)이며 남쪽은 양(陽)인데 물[수(水)]의 성품인 음을 띄워 비를 기원한다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각에 따른 것이라 했다. 열린 문으로 음기(陰氣)가 들면 한양 여인네들 음기(淫氣)가 발동해 바람날까 저어해 폐문했다는 속설도 있다.
혹 이 문 주소지 삼청동(三淸洞)의 淸이 숙청문 이름에 들어간 게 아닐까. 또는 음기의 방위(북쪽)인 만큼 ‘엄숙하게 정화(淨化)하여 미리 기풍을 잡는다’는 뜻으로 肅淸이란 이름을 달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 숙청이란 말이 그리 으스스한 뜻으로 점차 굳어지니 백성들이 매일 보는 성문의 이름으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다만 추측이다.
지금 이름 숙정문(肅靖門)의 靖은 ‘편안하다’ 또는 ‘고요하다’는 뜻이다. 문자 하나를 바꿔 끼우니 성문의 느낌이 180도 바뀌었다. 이렇게 이름은 사물의 간판이자 인상(印象)이다. ‘숙청’이 스탈린이나 김정은을 즉각 떠올리듯. 기호학자이기도 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품은 속뜻과도 통하는 얘기다. 이름은 사람이 짓는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엄숙(하다), 공경, 정숙의 뜻 肅자(字)의 본래 그림이나 기원은 여러 자료를 뒤져도 석연(釋然)치는 않다. 초기(원시)문자라 할 갑골문에서는 이 글자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다음 시기(고대 중국의 주나라쯤) 문자인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왼쪽작은사진)에서 처음 보인다. 정치적 의미가 짙고, 심리적으로 정교한 인식을 필요로 하는, 고급스러운 개념어다.
손에 수건[건(巾)]을 들고 연못에서 일하는 그림으로 깊은 못에 임하듯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 자전(네이버 한자사전)은 설명한다. 중국학자 이락의(李樂毅)가 쓴 ‘한자정해’는 허신의 ‘설문해자’ 해설에 기대어 연못 위에서 붓[율(聿)]을 잡는 매우 조심하는 모습이니 ‘일에 임해 마치 못가를 걷는 것처럼 엄숙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풀었다.
흔쾌히 수긍할 수 있는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수천년 역사의 한자, 뜻 품은 그림이 돌고 돌아, 구르고 흘러 그런 디자인을 갖추게 된 뒤안길에는 상상을 넘는 얘기들이 많이 접혀 있을 터다. 그 굽이굽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표면의 모양(지금 한자 형태)만으로 유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빙산일각(氷山一角), 한자의 역사성이다.
손에 삿대(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막대기) 잡은 모양을 붓을 쥔 손의 모양[聿]으로 표현했다고 해석한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의 풀이가 그중 그럴듯하다. 한자가 그림으로부터 발생했다는 큰 틀을 잊지 않으면 한자의 비유(比喩)와 상징(象徵), 그 미학이 마음에 다가선다.
엄숙(하다), 공경, 정숙의 뜻 肅자(字)의 본래 그림이나 기원은 여러 자료를 뒤져도 석연(釋然)치는 않다. 초기(원시)문자라 할 갑골문에서는 이 글자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다음 시기(고대 중국의 주나라쯤) 문자인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왼쪽작은사진)에서 처음 보인다. 정치적 의미가 짙고, 심리적으로 정교한 인식을 필요로 하는, 고급스러운 개념어다.
손에 수건[건(巾)]을 들고 연못에서 일하는 그림으로 깊은 못에 임하듯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 자전(네이버 한자사전)은 설명한다. 중국학자 이락의(李樂毅)가 쓴 ‘한자정해’는 허신의 ‘설문해자’ 해설에 기대어 연못 위에서 붓[율(聿)]을 잡는 매우 조심하는 모습이니 ‘일에 임해 마치 못가를 걷는 것처럼 엄숙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풀었다.
흔쾌히 수긍할 수 있는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수천년 역사의 한자, 뜻 품은 그림이 돌고 돌아, 구르고 흘러 그런 디자인을 갖추게 된 뒤안길에는 상상을 넘는 얘기들이 많이 접혀 있을 터다. 그 굽이굽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표면의 모양(지금 한자 형태)만으로 유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빙산일각(氷山一角), 한자의 역사성이다.
손에 삿대(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막대기) 잡은 모양을 붓을 쥔 손의 모양[聿]으로 표현했다고 해석한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의 풀이가 그중 그럴듯하다. 한자가 그림으로부터 발생했다는 큰 틀을 잊지 않으면 한자의 비유(比喩)와 상징(象徵), 그 미학이 마음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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