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주카페 등 평소의 2∼3배 몰려
역술인 30만여명… 연매출 3조∼4조
‘당신의 복을 찾아드립니다’, ‘여러분의 착잡한 마음에 빛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사주·궁합·토정비결 등 ‘운세 보기’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엿보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역술인과 무속인 등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점술의 세계로 유혹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점술을 보기도 한다. ‘타로점’이라는 서양 점술 또한 널리 펴지는 등 운세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사람들이 점술에 의지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역술인 등 전문가들은 “운세를 참고해서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은 좋지만 맹신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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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27일 철학관·역술원 등의 간판이 즐비한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 주변 점성촌 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미아리 점성촌’에는 한때 100개가 넘는 점집이 몰려 호황을 누렸으나 인터넷 사주풀이, 사주카페 등에 밀려 지금은 일부만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
27일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세계일보 공동조사에 따르면 ‘운세를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88.3%로 압도적이지만 ‘운세를 믿는다’는 사람은 50.9%로 절반 수준이다. 운세를 본 이유로는 ‘재미 삼아’가 50.3%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운세를 믿지는 않아도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점술을 찾는 사람이 꾸준하다 보니 관련 시장 규모도 작지 않다.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은 30만명 수준, 연매출은 3조∼4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무속인이 운영하는 점집과 사주카페, 인터넷, 노점상 등을 포함하면 훨씬 더 늘어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운세인 사주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10가지 천간과 12가지 지지로 표현한 뒤 음양오행을 따져 길흉화복을 점친다. 궁합은 결혼을 앞둔 남녀의 사주를 바탕으로 부부로서의 길흉을 알아보는 것이다.
토정비결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토정 이지함이 만든 것으로, 사주를 바탕으로 한 해 동안의 길흉화복에 대한 예측을 담은 예언서다. 조선 후기부터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양에서 건너온 타로는 메이저 카드 22장, 마이너 카드 56장 등 총 78장으로 구성된 카드 중 3장을 뽑아 카드에 그려진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는 점술로, 젊은 층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운세산업은 연말연시가 성수기다. 서울 종로구에서 역술원을 운영하는 한 역술인은 “연말연시에는 평소의 2∼3배가량 손님이 몰린다”며 “주로 일년 운세를 알아보거나 새해에는 자신의 상황이 좀 나아질 수 있는지 묻는다”고 말했다.
◆“단명할 것” vs “70세 이상은 산다”, 보는 곳마다 달라
사람들이 점술을 많이 보면서도 쉽게 믿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보는 곳마다 말이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명한 서울 시내 역술원 2곳을 찾아 운세를 본 결과 사실상 정반대의 사주 풀이가 나왔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역술원을 찾아 기자가 태어난 연월일시를 제시했더니 “오래 살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역술인은 “사고사를 당할 수도 있고, 건강검진 결과가 좋게 나오더라도 갑자기 병에 걸려 2∼3개월 안에 죽을 수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직업과 재물운에 대해서는 “사업을 하면 백수가 되기 쉬우니까 계속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며 “금전도 넉넉하지 않은 사주”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 종로구의 한 사주카페에서 본 사주는 이와는 달랐다. 이곳의 역술인은 “체력이 약한 사주긴 하지만 최소 일흔 살까지는 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45세 이후에는 사업을 해도 괜찮고, 금전운이 크게 좋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주를 보는 곳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역술인들의 말이 엇갈린다. 사주카페의 역술인은 “사람마다 해석이나 표현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방대학원대학교 김도희 교수(미래예측학·역술인)는 “사주는 통계학이므로 다를 수가 없다”며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사주풀이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을 먹고사는 산업… 맹신은 삼가야
운세산업을 지탱해 주는 ‘힘’은 사람들의 불안감이다. 인간이 세상에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품고 가야 하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마음이 점술에 의지하게 만든다.
덕성여대 최승원 교수(심리학)는 “미래를 내다봐서 준비하고 통제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며 “인간은 정보의 타당성이 떨어져도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점술은) 기능으로 보면 종교랑 다르지 않다”며 “사람은 최대한 생각을 덜하고 결론 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과학에 비해 점술은 단순하게 명쾌한 답을 준다”고 덧붙였다.
역술인 등 운세산업 종사자들은 점술이 사람들의 불안함을 어루만져 ‘힐링’을 해준다고 주장한다.
한국역술인협회 김상회 중앙부회장은 “역술인들이 사주 상담을 해주는 목적은 치유에 있다”며 “상담을 하러온 손님의 마음의 병을 다독이고 희망과 용기를 줘 새로운 각오와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비춰 준다고 해서 맹신하는 건 금물이다.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은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며 “비 온다는 예보가 있을 때 우산을 챙기는 마음으로 참고만 해서 인생을 꾸려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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